1802년 응우옌 아인은 프랑스의 도움을 얻어 떠이선 왕조를 멸하고 베트남을 통일, 응우옌 왕조의 지아 롱(嘉隆) 황제가 되었으나 곧 외세 배격에 나섰다. 그는 재위 말년에 애첩과의 사이에서 넷째아들로 태어난 치담을 후계자로 선정했다. 치담은 왕위 계승 자격이 없었으나 자식들 중 유럽인에 가장 비판적인 인식을 가졌다는 이유로 부왕의 선택을 받았다.
1792년 오늘 태어난 치담은 28살 때 민 망(明命) 황제로 즉위했다. 엄격한 유학자였던 그는 그리스도교가 황제에 대한 베트남들의 경외심과 복종심을 훼손한다고 여겼다. 그는 선교사들의 입국과 선교를 금지하고 이를 어기는 선교사들은 투옥시키는 등 그리스도교 박해에 나섰다. 그는 동시에 왕위 계승 명분이 약한 자신의 처지를 의식, 외세의 힘을 빌린 이들에 의해 왕위를 빼앗기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1833년 사이공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반란 지도자들이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자 이듬해에 걸쳐 선교사와 베트남의 그리스도교 개종자들을 처형했다. 1841년 숨진 그는 재위 기간 내내 그리스도교와 서구를 배격했고 이는 1858년 프랑스 침략의 빌미가 되었다.
김지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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