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한국인의 24시

입력 2011-05-23 09:10:00

한국인의 24시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에 대해 정부가 1년에 걸쳐 조사한 보도가 있었다. 오전 4시 30분 영등포에서 건물 청소 일을 하는 60대 여성을 시작으로 7~9시 출근 러시아워가 되고 아이들을 등교시킨 주부들은 10시부터 바빠지는데, 2명 중 1명은 외출을 해서 문화센터나 모임 쇼핑 등으로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오후 1시에 초등학생이 하교를 하고 그 중 절반은 학원으로 가며, 10명 중 1명은 밤 9시까지 학원에서 보낸다. 중'고등학생은 10명 중 2명이 새벽 1시가 넘어서야 학원을 나와서 귀가하는데, 0.4%의 시민들은 그 후의 시간에도 돌아다니다가 때늦은 귀가와 이른 출발의 교차점이 되면서 또 하루의 시작과 맞물려 쉬지 않고 돌아간다.

현대인의 삶이란 시간의 연속성에 떠밀려 자신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흘러간다. 어느 날 문득 벽에 걸린 달력이 절반의 두께로 얇아져 가고 있음을 확인하고 가슴이 쿵하고 무너지는 일도 나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다. 어찌 하루를 24시간으로만 계산할 수가 있을까. 시간의 속도에 비해 더욱 숨이 가빠오는 건 그렇게 쉼없이 움직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점점 잃어가면서 심리적 부재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루마니아의 작가 콘스탄트 게오르규는 인간의 존엄성을 잃어버리고 기계와 산업과 자본의 거대한 힘에 의해 방황하는 인간 부재의 시간을 '25시'라는 책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 요한 모리츠는 소박한 성품의 평범한 농부이다. 어느 날 그는 까닭 없이 징발당하여 유대인 캠프에 수용되면서 파란만장한 고통의 상황을 거듭하게 된다. 전쟁 중에 고문을 당하다가 헝가리 정부에 의해 독일로 팔려가서 인종학자 뮐러 대령을 만나자 이번에는 게르만 민족의 정통파인 '영웅족'의 표본이란 판정을 받고 군인이 되어 프랑스 포로를 구출하여 미군 진영에 이르자 처음에는 연합군을 위한 영웅 대접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적성국가의 시민이라는 이유로 수용소에 가둔다. 무려 13년간 100여 군데의 수용소를 거친 후 어느 날 그는 체포되던 때처럼 영문도 모르게 석방된다. 그러나 석방된 지 18시간 만에 다시 동구인이라는 이유로 억류당한다. 서구 산업사회는 이미 인간에 의해 구성된 사회가 아니라 기계와 인간의 거대한 조직이다. 사회의 한 부속품이 되어가면서 개인의 특성은 사라지는 이 인간 부재의 상황을 코루가 신부를 통하여 '25시'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것은 마지막 시간이 지나가 버린 후의 폐허의 시간, '메시아가 와도 구원해 줄 수 없는' 절망의 시간인 것이라고. 하지만 하느님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만든 아시아의 보석 귀걸이라고 극찬하며 '한국 찬가'를 출간했던 게오르규는 결국 인간을 통해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인의 24시'가 인간의 가치를 위한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강 문 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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