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최의 세상 내시경]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입력 2011-05-06 15:02:18

한때 케이블 TV의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라는 광고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재미있다고 느껴서 유행을 한 데에는 아마도 역설이 주는 묘미가 웃음코드를 자극한 게 아닌가 싶다. 어디까지나, 보험을 들게 할 때 해당되는 말이지, 보험지급 시엔 아주 꼼꼼히 따져보고, 세세히 약관내용을 보고 난 후 지불하는 게 보험사의 관행일 듯싶다. 내놓고 보험상품의 장점만 강력하게 주입시키기 위한 기발한 카피에 웃음이 절로 나오는 것이지만, 밑에 아주 작은 글씨로, 약관 참조라는 글이 실은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정말 묻지도 따지지도 않을까? 정말 그럴까?

하지만 이 광고가 한 가지 말해주지 않은 게 있다. 오히려 철저히 '묻고 따져서' 제외시키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일반 보험에 가입하려고 해도 가입할 수 없는 장애인들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장애인들은 보험가입에서만은 차별을 당하고 있다. 민간보험회사의 보험약관이나 상품요약서에서는 아직도 장애인을 구별해 취급하는 일부 차별적 조항들이 남아있고 제대로 된 보험혜택을 입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다. 최근 보험업계가 공동으로 개발한 장애인전용 상품(곰두리보장보험)의 판매실적이 상당히 저조하게 나타났다. 일반인과 같은 보장을 받으면서도 저렴한 보험료에 만기환급까지 가능한 상품임에도 가입실적이 저조한 것은 여론에 떠밀려 상품을 내놓긴 했지만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영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얼마 전 한 뇌성마비 장애인은 케이블 광고를 보고 실손 의료보험에 가입하려고 했다가 단번에 거절당했다. 당시 그 장애인이 스쿠터를 몰고 있는데 '장애인은 많이 다치고 또 많이 아프기 때문에 가입이 안된다'는 게 이유였다. 물론 장애인들의 노력과 오랜 문제 제기를 통해 신체적 장애인들의 경우는 상당부분 보험가입이 가능해졌다. 예전에는 청각 장애인이라서 암 보험에 가입할 수 없고, 시각장애인이어서 여행자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예가 다반사였다. 이제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런 문제는 대부분 없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돼야 할 부분은 지적장애인 혹은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다.

법 개정에 대한 요구가 거센 가운데, 국가인권위원회에는 지난해 지적장애인에 대한 보험가입 불가통보는 차별행위라며 해당 보험사에 시정을 권고했고, 정신장애를 이유로 보험가입을 거부당한 장애인들도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등 차별시정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다.

선진국을 따라가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아무리 위험률이 높은 장애인이라도 획일적으로 보험가입 자체를 금지시키지는 않는다. 대신 인수조건을 다양화시켜서 보험료를 조금 높인다든지 혹은 연령별로 보험료를 차등한다든지 보험금 지급요건이나 기간을 조정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장애인에게 더욱 절실한 것이 보험임에도 정작 많은 장애인이 보험에 들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하루빨리 개선되고, 내실 있는 장애인 전용상품들이 늘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최 중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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