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토크(25)]산울림 성공 신화의 조력자, 지역 라디오, 전국 음악감상실

입력 2011-05-06 13:51:53

대개 스타 음악인의 데뷔에는 이야깃거리가 많다. 별다른 화제가 없으면 만들어내기라도 하는 것이 쇼비즈니스계의 행태이다. 그룹사운드의 탄생에도 신화 같은 이야기들이 있기 마련인데 대체로 영미권 슈퍼 그룹들의 탄생 비화를 상황에 맞게 흉내낸다. 특히 프로 음악인들이 그룹사운드를 만드는 경우나 스타들이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 때면 모임의 동기 자체를 이슈로 부각시킨다.

한국대중음악계에서 그룹사운드의 탄생과 관련해 어떤 이슈나 신화가 없는 특이한 밴드가 있다. 김창완'창훈'창익(2008년 사망) 삼형제로 구성된 '산울림'이 주인공이다. 형제가 밴드를 만들었으니 별다른 신화가 없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산울림은 데뷔 앨범을 내면서 신화를 만들어간다. 하지만 그 신화는 지극히 아마추어적이다.

우선 음반사 선정부터가 그렇다. 삼형제는 전화번호부에서 음반사를 찾아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전화를 걸어 계약을 한다. 또 녹음을 하기로 한 날이 입사시험 날짜와 겹치자 시험을 포기하고 녹음을 했다고도 한다. 이뿐만 아니라 녹음실에 김창완이 들고 들어간 기타는 1만원짜리 중고 기타였다. 이렇게 어설프게 녹음된 데뷔 앨범이 발매 20일 만에 40만 장이라는 판매고를 올린다. 앨범에 수록된 '아니 벌써'는 신중현의 '미인',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와 함께 가장 충격적으로 등장한 가요로 평가받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산울림 멤버 누구도 이런 결과를 기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저 100장 정도 기념 음반을 가지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산울림의 성공에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었다. 우선 훗날 대성음반을 설립하는 이흥주가 있는데 산울림 제작 당시는 PD메이커였다. PD메이커는 무등록업자가 등록음반사의 자본 등을 지원받아 음반을 제작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흥주의 경우 서라벌레코드 문예부장이면서 PD메이커였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이흥주는 산울림의 가능성을 예측하고 음반 제작을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이흥주의 안목은 남달랐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최백호, 하수영, 정종숙처럼 다른 음반사에서 퇴짜를 맞은 가수들을 발굴해 스타로 만들기도 했다.

산울림 성공의 또 다른 조력자는 다운타운 DJ들과 지역 라디오 PD였다. 우선 DJ들에게 산울림의 음악은 인상적이었는데 자신들의 음악 영역에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심지어 '오늘 하루 산울림 음악을 틀자'라는 결의를 하면서 전국 음악감상실에 산울림의 곡이 나오는 일도 있었다. 지역 라디오도 마찬가지였다. 전국 방송에서 나오는 음악과는 차별화된 정서를 원했던 지역 PD들에게 산울림은 마침맞았다. 이들은 정서를 고려하면서 음악적으로 가치있는 것을 선호했다. 물론 산울림 성공의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음악이다. 하지만 음악적 가치와 청년문화의 정서를 귀하게 생각했던 이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쏠림과 집중이 만연한 지금의 한국대중음악계의 해법이 다운타운과 지역방송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