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척추관 협착증 앓는 김정대 씨

입력 2011-04-27 09:37:28

'침대 인생 20년' 딸의 미래도 빼앗아

"이 봄이 싫소.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소." 척추관 협착증 때문에 몸을 일으킬 수 없는 김정대(52'지체장애 1급) 씨는 매일 침대에 누워 지낸다. 지금 그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침대를 벗어나 딸과 함께 바깥의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이다. 우태욱기자

"자식이 부모한테 은혜를 갚는다고 하는데, 저는 자식한테 은혜를 갚고 살아야할 형편이지요."

척추관 협착증을 앓는 김정대(52'지체장애 1급) 씨는 "20년간 딸에게 빚을 지고 살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김 씨는 침대에 누워 24시간을 보낸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그의 손발이 된 외동딸 미현(가명'27) 씨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딸의 든든한 방패가 돼 주지 못해 미안한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말없이 바라보는 딸, 이들 가족에겐 익숙한 풍경이다.

◆어둠의 시작

이달 25일 오후 2시 대구의 한 영구임대아파트. 낮이었지만 39.6㎡ 남짓한 공간에는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좀체 빛이 들지 않는 집과 달리 전동 침대에 누워 취재진을 맞이하는 김 씨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어서오십쇼. 바깥 구경 안한 지 보름이 훨씬 넘었구먼. 허허." 김 씨는 오른손에 쥔 리모컨 버튼을 눌러 침대를 서서히 일으켰다.

김 씨는 보증금 200만원, 월세 5만5천원짜리 아파트에서 딸 미현 씨와 단둘이 산다. 세 식구가 함께 밥을 먹었던 기억은 김 씨의 머릿속에서 오래전에 지워졌다. 아내는 미현 씨가 돌이 되기도 전에 집을 나갔다. 그래서 그는 딸에게 엄마 역할까지 해내는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1991년 10월 5일. 당시 종이공장에서 일했던 김 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가다 사고가 났다. 오토바이와 함께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몸은 그날 이후 자신의 몸이 아니었다. "팔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았어요. 꼭 죽은 몸 같았죠. 병원에서는 척추 신경이 심각하게 손상됐다고 하더군요." 김 씨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딸이 7살되던 해였다.

그는 척추관 협착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척추관 협착증은 척추가 내려앉아 신경이 눌리는 증세다. 그렇게 꼬박 5년간 식물인간처럼 바닥에 누워 지냈다. 병간호를 해주던 어머니가 2년 뒤 세상을 떠났고 그 뒤 초등학생인 딸에게 식사와 대소변 모든 것을 의지하게 됐다.

◆딸을 위한 마지막 선물

희망은 있었다. 경산에 있는 한 병원에서 2년간 집중 치료를 받으며 몸이 많이 회복됐다. 손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던 김 씨였지만 상반신에 감각이 돌아왔다. 그때 쓴 병원비만 2천만원이 훌쩍 넘었다. 치료를 더 받고 싶어도 불어나는 병원비가 무서워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집에 있어도 마음이 편치 않다. 외출도 제대로 못하고 아버지 곁을 지키는 미현 씨의 얼굴을 볼 때마다 미안함이 밀려와서다.

아버지의 장애는 딸의 미래를 빼앗았다. 미현 씨는 전문대에 다니다 등록금이 부담돼 한 학기만 다니고 관둬야 했다. 미현 씨가 없으면 식사도 못하는 아버지가 걱정돼 안정적인 직장도 구하지 못하고 있다. 27세, 여자로서 새로운 가정을 꿈꿔야 할 나이다. 미현 씨는 5년 넘게 교제하며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에게서 얼마 전 이별 통보를 받았다. 그때부터 딸은 아무런 말없이 누워서 지낸다.

"다 나 때문이에요. 나 때문. 내 딸의 미래를 내가 갉아먹고 있어요." 김 씨는 "딸의 결혼 상대에게 자신이 짐이 된 것"이라며 천장을 바라봤다.

나는 자식에게 어떤 부모인가. 그는 항상 부모의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부족한 부모이지만 김 씨는 딸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 있다고 했다."언제까지 딸래미 붙잡고 살 순 없잖소. 필요할 때 부르면 도와줄 친구놈도 있고, 미현이 결혼하면 이제 따로 살아야 하제. 절대 같이 살지 않을거여."

◆"이 봄이 빨리 지나갔으면…"

김 씨는 지난해 5월까지만 해도 휠체어를 타고 움직일 수 있었다. 아파트 복도 난간을 잡고 천천히 걷기도 했다. 자신과 비슷한 장애를 앓는 아파트 주민들과 한 달에 한 번씩 나들이 갈 만큼 건강이 많이 회복됐었지만 갑자기 병이 심해졌다. "아침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는데 허리에 무리가 갔나 봐요. 온몸이 마비돼 119를 불러 병원에 실려갔지 뭐요." 그뒤로 김 씨의 '침대 인생'이 다시 시작됐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받으면 건강이 회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초생활수급자지만 수술비와 재활치료를 받으려면 최소한 500만원이 필요하다. 김 씨의 한달 생계급여 40만원으로 감당할 수 없는 큰 돈이다. 그의 방에는 관장약 박스가 곳곳에 쌓여 있다. 한 박스에 1만1천원 하는 이 약으로 그는 열흘을 버틴다. 20여년 전 사고 이후 제 힘으로 화장실에 가본 적 없다. "원래 한 박스에 9천원 했었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큰 돈이지요."

김 씨의 전동 침대 위에는 큰 창이 나 있다. 바깥세상과 그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다. 김 씨는 이제 창밖을 쳐다보지 않는다. 활짝 핀 벚꽃, 푸르게 변한 나뭇잎들을 가까이서 볼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더 비참하게 느껴져서다. "바깥 공기를 쐬고 싶어요. 정말로." 깜깜한 밤처럼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김 씨의 인생, 그는 화창한 이 봄날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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