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世襲 채용

입력 2011-04-25 10:47:44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 개체가 후천적으로 얻은 형질 변화는 자손에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훈련에 의해 튼튼한 다리를 갖게 됐어도 튼튼한 다리 자체는 자식에게 유전되지 않는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생 동안 수많은 지식과 지혜를 얻었더라도, 유전적 수단으로는 그 중 한 가지도 자식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각각 새로운 세대는 무(無)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획득형질이 유전된다면 어떻게 될까. 인간사회로만 시야를 좁혀 보자. 권력과 부를 소유한 자의 자손은 영원히 권력과 부를 독점하게 될 것이다. 그가 획득한 지식과 지혜가 그대로 자식에게 전달되고 이를 바탕으로 자손은 부와 권력, 지식과 지혜를 더욱 늘려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못 가진 자의 자식이 물려받는 것이라고는 빈곤과 무지뿐이다. 재산이 없으니 교육받을 기회도, 지식과 지혜를 얻을 기회도 없다. 지식과 지혜가 없으니 재산을 늘릴 가능성도 사라진다. 그래서 빈곤층은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획득형질의 저주'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과거보다 줄긴 했지만-개천에서도 용은 난다. 획득형질이 유전되지 않는 증거의 하나라고 할까.

그러나 획득형질도 누적되면 유전자 변화를 초래해 인류를 '잘난 인종'과 '못난 인종'으로 나눌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영국 런던 정경대 다윈연구센터의 올리버 커리 박사는 10만 년쯤 뒤에는 상류층, 고학력자, 영양 상태가 좋은 사람을 집중적으로 배우자로 택하면서 유전적으로 뛰어난 폐쇄적 집단이 생겨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 결과 출산이나 결혼은 그 집단 내에서만 이뤄지면서 엘리트 집단은 지속적으로 유전적 개선이 이뤄지는 반면 열등한 인간들은 갈수록 흉물이 되어간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정규직 자녀 세습 채용'을 관철했다. 현대자동차에서 근무하면서 습득한 지식과 기술이 자녀에게 유전이라도 됐다는 말인가. 그리고 왜 정규직 자녀만인가. 현대자동차 직원이라도 비정규직의 지식과 기술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는 매우 불공정하다. 현대자동차 정규직이 아닌 못난 부모를 둔 많은 젊은이에게서 동일한 출발의 기회를 뺏는 것이다. 재벌의 경영권 세습이나 천부(賤富)들의 부의 대물림과 무엇이 다를까.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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