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누가 목숨을 끊거나 잃었다고 하면 욕할 일이 있어도 입을 다물어준다. 파헤칠 게 있어도 더 이상 숨겨진 뒷얘기는 캐내지 않고 덮어 버린다. '죽일 놈'이라고 욕하고 싸우다가도 막상 그 대상이 죽게 되면 갑자기 관대해진다. 세상살이로 보면 미덕(美德)이고 부정적으로 보면 감성에 빠져 필요한 조치나 이성적 판단까지도 회피하는 나쁜 성정(性情)이다. 지난 정권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 그랬고 아직 마무리가 끝나지 않은 KAIST 사태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젊은 수재들의 죽음은 분명 이 사회의 손실이고 안타까운 비극이다. 그러나 자살과 남아있는 절대다수 학생들의 앞으로의 교육은 떼놓고 판단해야 한다. 남은 아이들의 인생과 그들이 미래에 펼치고 창조해 낼 국익과 성장이익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그 잠재된 미래의 역량은 보호되고 확장되고 지원받아야 되는 가치인 것이다. 결코 목숨보다 가볍지 않은 값진 가치다. 비록 떠나는 자의 비극과 상처가 깊더라도 남은 자와 산 자가 걸어가야 할 길은 끝없이 뻗어 있는 것이다. 나라의 미래로 열린 길이다. 앞으로 또 다섯 번째의 자살 학생이 더는 안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영어 수업을 줄이거나 등록금 혜택 기준을 완화하는 땜질식 처방을 내릴 것인지도 확실하게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그런 모호한 갈등 속에서 그어야 할 하나의 선(線)이 있다. 그럴수록 '더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재(才)만 넘치는 연약한 지식인이 아니라 웬만큼 자극이 와도 견딜 수 있는 두꺼운 감성, 어지간한 시련쯤 버텨낼 수 있는 정신적 지구력 그리고 무한한 꿈이다. 그걸 키우고 단련시켜야 한다. 영어 수업만 A학점 맞으면 인생이 '짠'하고 끝날 수 있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살기 좋고 쉬운 세상인가. 바깥 세상, 잘나가는 나라의 청년 교육은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 않는다. 세계의 명문이라는 '공부 벌레' 하버드도 연약한 지식인만을 고르고 키우지는 않는다. 수학 성적, 영어 성적표만 보고 뽑지도 않는다.
실명(失明) 사고로 장애인이 됐으면서도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 정책차관보를 지낸 강 모 씨는 성공한 자녀 교육 지표를 '지력(知力)보다는 심력(心力)'이라고 했다. 그의 아들은 고교 수학 성적도 C급이었고 미국 수능시험(SAT) 성적도 800점 만점에 710점밖에 안 됐었다. 성적만 보면 하버드는 꿈도 못 꾼다. 그러나 하버드 대학에서는 '안과 의사가 돼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주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한 그의 마음과 꿈이 차세대 지도자감으로 충분하다며 불렀다. 눈 못 보는 아버지가 지력보다는 꿈과 의지, 심력을 길러 키운 결과였다.
우리의 교육 제도, 대학들의 교육 철학은 지력(知力)의 계량(計量)에만 매몰돼 있다. 거의 모든 시험들은 사 다지(四 多枝) 선택이다. 가나다라 4개의 단답 외엔 자기 생각이 있어도 표현해 낼 기회나 공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제시해 준 4가지 정오답 안에서만 사고(思考)하고 찍거나 풀이하면 끝이다. 창의성, 자신만의 꿈 같은 건 끼어들 틈이 없다. 인내와 끈기로 창의적 답을 찾고 풀어가는 과정도 필요 없다. 어릴 때부터 고뿔만 들어도 이불 쓰고 땀 내는 자연 치유의 인내나 끈기 형성의 훈련 대신 해열제로 고통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해준 무(無)고통, 과보호의 연장선이다. 강한 아이가 될 리 없다. 작은 고통만 닥쳐도 쉽게 좌절하고 조금 더 강한 고통이 닥치면 자살로 이어진다. 그게 우리네 교육의 모습이다.
그러나 초딩 때 컴퓨터 자질을 키워주기 위해 수학 수업을 면제시켜준 빌 게이츠나 중학교 때 월반시켜 창의성을 발휘하게 해준 스티브 잡스는 우리와 다르게 길러졌다. 세계 IT 업계 '빅 4' 회사는 다 그렇게 키운 인재가 만든 회사다. 그 애플(스티브 잡스), MS(빌 게이츠), 인텔, IBM이 금년 1분기 단 3개월 사이 168억 달러(약 20조 원)라는 천문학적인 순이익을 미국 호주머니에 쓸어 담아갔다. 자원 없는 우리는 미래시대에 맞는 인재를 안 키워 내면 나라의 미래가 없는 나라다. 시련을 못 견디고 자살했다는 이유로 국회에서 총장 사퇴나 시비하고 있을 동안에도 하버드 도서관에서는 소리 없이 책장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들 역시 자살 학생은 나온다. 그래도 도서관 벽에 붙은 격문은 당당하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인생의 전부가 아닌 공부 하나도 정복하지 못한다면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누가 뭐라 떠들든 남은 자는 강하게 키우며 앞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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