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우리 동창회] 대구 남산초등학교 총동창회

입력 2011-04-22 10:00:25

30,40년 전 코흘리개들, 다시 뭉친 우정 '뜨거운 단합'

지난해 남산초교 총동창회가 주관한 정기총회 및 남산인의 밤 행사에서 동문들이 건배를 하고 있다. 남산초교 총동창회 제공
지난해 남산초교 총동창회가 주관한 정기총회 및 남산인의 밤 행사에서 동문들이 건배를 하고 있다. 남산초교 총동창회 제공
남산초교 총동창회 체육대회에서 동문들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남산초교 총동창회 제공
남산초교 총동창회 체육대회에서 동문들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남산초교 총동창회 제공
최철원 총동창회장
최철원 총동창회장

일제강점기 민족문화말살정책이 극심하던 무렵인 1935년 6월 대구시 중구 남산동 지금의 자리에서 교문을 연 대구 남산초등학교는 올해로 개교 76주년이 됐다. 졸업생 수는 올 2월 기준 3만6천 명을 넘어섰다. 남산초등학교는 지리적으로 대구 중심에 자리했기 때문에 도시가 현재처럼 팽창하기 이전이었던 1960년대와 70년대 말까지 전체 학생 수가 5천여 명이 넘었다.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엄청난 과밀학교로 하루 2, 3부제로 나눠 수업을 했던 1960년대 중반 이후 남산초등학교는 대성, 대명, 내당, 신흥, 성남초등학교로 학생들을 분산하기 시작했다. 남산초교는 어찌 보면 이들 초등학교의 맏형격인 셈이다.

이 때문에 이 시절 남산초교를 다녔던 동문들은 "대성 돼지를 잡아서 내당 냇물에 씻어서 수창 숯불에 구워서 남산 남보원에 바쳐라"라는 치기 어렸던 노랫말을 기억하기도 한다.

지난해 5월 졸업생들의 대표가 된 최철원(28회'60'원갤러리 대표'대구광역시 체조협회장) 총동창회장은 "총동창회는 동문들이 행복하고 화합하며 단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어려웠던 시절 코흘리개들의 우정이 남달라 전 동문이 잘 따라주고 있으나 회장으로서 언제나 '위산수요일석'(爲山須要一石'태산도 하나의 돌부터 이뤄진다)을 화두로 삼아 동창회를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남산초교 총동창회는 2004년 12월 출범했으며 존경, 사랑, 봉사를 회훈(會訓)으로 삼고 있다.

최 회장은 "개성이 다른 각각의 동문들이 약 40여 년 만에 만났으니 감회가 남다른 것은 물론이고 총동창회의 회훈 역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덕목들인지라 동문들의 반응이 뜨겁다"고 전했다.

남산초교 총동창회 산하엔 매월 모임을 갖는 산악회, 골프회를 필두로 여성회, 바둑동호회, 마라톤 동호회, 올레길회 등 취미별 6개 소모임 활동이 왕성하다. 이 중 특히 여성회는 각종 사회단체를 찾아 자원봉사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으며 올레길회는 원로 동문을 위주로 건강과 친목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펼치고 있다.

◆우리 학교 지원 이렇게…

남산초등학교는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노후한 시설이 많다. 현재 남산초등학교는 생물학습재배 배포 및 발명교육 시범학교로 지정돼 있고 평생학습관과 강당을 신축하려고 하고 있다. 올해 총동창회는 이에 필요한 물자를 적극 지원하기 위해 모교 측과 협의 중에 있다. 또 여느 초등학교에나 있을 법한 교훈비가 없어 이도 세울 예정이다.

서윤석(36회'52) 사무국장은 "모교 인근이 교육투자우선학교는 아니지만 여전히 가난한 주민들이 많아 후배들의 점심식사 비용을 총동창회에서 일부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학생 14명이 이의 혜택을 받고 있다.

서 사무국장은 이어 모교 교기인 유도부를 매년 수백만원씩 지원해 오다가 중단됐는데 이에 대한 재개도 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연과 함께했던 그때 그 시절

1960년대와 70년대를 통틀어 남산초교 인근은 전원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지금의 모습은 1980년대 중반 이후 개발붐이 불면서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갖춰졌다. 그전엔 모교 앞 신남로에는 도랑이 흐르고 맞은편엔 배추밭이 즐비했다. 4, 5월 배추밭에 노란 꽃이 피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었다. 도랑은 여름 장마철이면 반두로 물고기와 개구리를 잡을 정도로 맑았고 인근 밭엔 메뚜기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학교가 곧 놀이터였던 것. 이렇듯 자연과 더불어 놀다 보면 그만 귀가 시간을 잊어 부모님들이 호롱불을 들고 아이들을 찾아 나서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서정석(30회'58) 수석부회장은 "남산초등학교를 다니며 한 가지 잊을 수 없는 일은 소풍이나 운동회 같은 학교 행사 날이면 유독 비가 자주 온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서 수석부회장은 그 까닭을 학교가 자리한 풍수지리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남산초등학교의 현 강당 자리가 예부터 '용이 똬리를 틀고 있는 자리'라는 것. 이외에도 운동회가 열리는 날엔 많은 학생을 수용할 수 없어 옛 영남중고운동장이나 시민종합운동장을 빌려 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손수현(30회'58) 수석부회장은 "당시 학교 앞에는 대신동 서문시장에서 출발한 말 수레가 고갯길을 넘어 성당동까지 자주 운행됐는데 개구쟁이들은 그 수레 뒤에 몰래 타고 덜커덕 덜커덕 한없이 집과 멀어진 곳까지 가기도 했다"고 추억했다.

또 잊을 수 없는 추억은 자주 불이 났던 서문시장이다. 불났다는 소리만 들리면 학생들은 열에 아홉이 만사를 제쳐 두고 불구경을 갔다. 먹을거리와 얻을 거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형제'자매가 헤어진 사연

남산초교가 분교를 시작하던 때 함께 남산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어느 날 갑자기 형과 동생, 누나와 동생이 다른 학교로 갈려지는 운을 맞기도 했다. 멀쩡하게 다니던 모교가 내당이나 대명, 성남초등학교 등으로 갈라지게 된 것. 이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서부근(31회'57) 감사의 기억에 의하면 전날 결석한 동기생 한 명이 자신의 학적이 내당초등학교로 옮겨진지 모르고 그냥 출석했다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자 선생님께 '왜 저는 안 불러요'라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이들 중 일부는 남산초등학교가 좋아 학교를 옮기지 않으려고 떼를 쓰기도 했다.

과밀학생을 다 수용하지 못해 약전골목 구헌병대가 주둔했던 자리에 남산분교 희도초등학교를 지어 몇 학기를 다닌 동문들도 있다. 이들은 추운 겨울 책걸상을 질질 끌며 이사를 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납작만두와 단팥죽에 어린 기억

남산초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먹을거리가 바로 현재까지 성업 중인 미성당 납작만두와 이제 기억 속에만 있는 제일당 단팥죽이다. 대개의 남산초교 동문이라면 어릴 적 소원 중 하나가 납작만두나 단팥죽을 실컷 먹어보는 일일 것이다.

어린 코흘리개의 식탐은 육성회비나 참고서를 산다며 부모님께 얻은 돈으로 몽땅 이들 만두와 단팥죽을 사 먹는 뒷감당 안 되는 일은 저지르게도 했다. 요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납작만두의 명성은 실은 남산초교 동문들의 입소문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까지 그때 납작만두 맛을 못 잊어 심지어 서울에서도 수시로 동문들이 찾아오고 있다는 후문이다.

◆우리 학교를 빛낸 동문들

학생들이 지나칠 정도로 많았던 이전의 남산초등학교는 환경은 그리 좋지 않았으나 교사들은 대개 사범대와 교육대학 출신이 많아 엄격하고 열성적인 가르침을 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산초교 동문 중 정계는 정호용(8회) 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이한구(21회), 추미애(34회) 국회의원이 활동 중이며 법조계는 김명곤(33회) 변호사를 선두로 김용권(33회), 이두희(34회), 박상도(35회), 박현경(36회) 변호사가 활동하고 있다.

학계는 이기덕(28회) 한양대 교수, 이진국(34회) 대구가톨릭대 교수, 김동원(35회) 고려대 교수, 손창현(36회) 경북대 공대 교수 등이 있으며 체육계엔 김재엽(40회) 88올림픽 금메달리스트와 서선앵(52회) 86아시안게임 체조 금메달리스트가 있다.

의료계엔 김인식(19회) 내과 원장, 김종훈(28회)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과장, 이동석(40회) 분홍빛으로 병원장 등이 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