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0년까지 국내외 1천개 도량 건립 불교도 韓流 "아시아 넘어 세계로
도심 포교의 성공 모델로 여겨지는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대구 남구 봉덕3동)가 5월 15일로 창건 20년을 맞는다. 20년이라는 짧은 역사 동안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는 거침없이 성장했다. 많은 사람이 급성장한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의 변화에 감탄하고 있다.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는 남구 봉덕3동에 건축면적 1만6천500여㎡의 대웅전과 옥불보전, 무량수전, 광명전 등을 보유하고 있다. 전국 최대 규모다. 이뿐 아니다. 감포도량과 경산도량, 서울동대문도량 등 국내 8개 도량과 중국 칭다오와 뉴욕, 시드니 등 해외 3개 도량, 카이로분원 등을 갖추고 있다.
한국불교대학의 신도 수는 15만여 명. 인터넷 카페 회원 수까지 합하면 20만 불자가 한국불교대학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는 단순한 사찰이라기보다 하나의 불교종합타운이라 일컬을 만큼 내부에 없는 게 없다. 다른 사찰에서 찾기 힘든 내생체험관이나 봉안당을 비롯해 어린이집과 유치원, 공원, 문화관, 갤러리 등 웬만한 편의공간을 모두 갖추고 있다.
하지만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의 시작은 초라했다. 1992년 대구 남구청 앞에 자리한 건물 4층 포교당에서 생활 포교를 시작한 것. 우학 스님은 "포교당이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처님이 앉아 계시던 곳을 없앨 수 없다는 마음에 정상화시키고자 인수했다"고 말했다. 보증금 3천만원, 월세 50만원인 전세법당이었는데 아는 신도로부터 2천만원을 빌리고 나머지 1천만원은 나중에 갚는다고 신신당부해 시작하게 됐다. 당시 스님 수중에는 125만원이 있었다. 100만원은 복사기를 사고 25만원은 플래카드를 만들어 붙였다. 이름하여 '영남불교대학'(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의 옛 이름)이었다. 우학 스님은 "당시 불교인들이 교리에 대한 갈증이 무척 많았지만 이론을 가르치는 곳이 별로 없었다. 도심에 자리하고 있다는 장점을 살려 교리를 강의하는 대학을 열어보자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우학 스님의 판단은 적중했다. 대학 1기부터 신청이 쇄도했다. 이러한 인기를 발판으로 4년 후 지금의 부지를 구하고 이전했다. 당시 부지 구매를 위해 빚을 많이 진 상태. 하지만 우학 스님이 펴낸 수필집 '저거는 맨날 고기 묵고'가 지금까지 100만 부가 팔리는 등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빚을 갚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우학 스님은 "가장 큰 힘은 십시일반 모인 신도들의 시주금"이라고 했다.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사찰의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시스템 운영이다. 우학 스님이 국내는 물론, 중국이나 뉴욕 등 해외에 오랫동안 출장을 가 있어도 사찰이 원활히 잘 돌아가는 것은 시스템화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는 관리 인원만 1천 명가량에 이른다. 우학 스님은 "이제 사찰도 스님 1명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시기는 지났다. 시스템 위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는 2가지 큰 목표를 잡고 있다. 하나는 2040년까지 국내외 1천 개 도량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불교의 세계화에 큰 전기를 마련하겠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초'중'고 학교를 설립하는 일이다. 우학 스님은 "우리나라 교육이 문제가 많은데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나 참좋은유치원이 성공 모델이 되었듯 전반적인 교육환경에 자극을 주고 학교 운영의 모델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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