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범어지하상가 활용, 원칙 세워 검토해야

입력 2011-04-16 07:06:15

1년 넘게 방치되고 있는 범어지하상가를 두고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방안과 '영어 거리'로 조성하자는 방안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문화 공간 활용 방안은 상가 공간을 유망 작가들의 작업실과 갤러리로 무료 임대, 시민들에게 문화의 향기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영어 거리 조성 방안은 생활영어 체험관과 영어 사용 의무화 커피숍, 영어 토론 광장 등을 만들어 시민들이 쉽게 영어를 익힐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논란은 대구시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대구시는 당초 범어지하상가의 문화 공간화 방침을 정했다가 뒤늦게 민간 측으로부터 영어 거리화 제안이 들어오자 이것도 고려하면서 논란의 불씨를 키웠다. 대구시는 영어 거리 조성도 추진하면서 문화 공간도 마련하는 절충 형태의 방안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는데 문화 공간화를 주장하는 측의 반발을 사고 있다.

어느 한 방안의 손을 들어주기가 쉽지 않지만 문화 공간화 방안이 명분상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대구에 봉산문화거리와 가창미술광장 등이 있지만 많은 유망 작가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 공간화 방안이 좋아 보인다. 상가 공간이 문화화돼 시민들이 더 많이 문화와 호흡하고 명소로 자라날 수 있다면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영어 거리화 방안도 나쁘지만은 않다. 우리나라의 영어 열풍이 지나친 측면이 있어 걸리긴 하지만 영어를 익히기 위해 해외 연수까지 가는 번거로움과 비용을 줄이는 데 일조한다면 긍정적인 기대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간을 그렇게 만들어 놓는다 하더라도 외국인들이 그곳을 많이 찾거나 시민들이 그 공간 성격에 맞게 이용할 수 있을지 현실적 문제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 제안한 측에서 회비 정도만 받아 운영할 수 있다고 하는데 수억 원의 임대료와 운영비 충당 문제, 운영 방식이 명확하지 않다.

대구시는 시간을 갖고 신중한 검토를 거쳐 범어지하상가 활용 방안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지나친 상업성을 배제해야 한다는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범어지하상가는 인근 아파트 시행사가 대구시민들을 위해 지어 기부채납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 공간화 방안의 경우 문화계의 여론을 충분히 수렴, 발전성을 살펴야 하고 영어 거리화 방안은 현실성과 운영 계획 등을 따져 영어 학원화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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