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더 이상 만물의 영장이 아니다. 20세기에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간은 얼마나 자신이 잔인한지를 스스로에게 검증해 보이지 않았던가. 그것도 모자라서 베트남과 아프리카 곳곳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국지전, 그리고 각종 국제적인 테러 활동을 통하여 인간은 잔악무도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전쟁이 문명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든, 아니면 민족해방전쟁의 이름으로 저질러졌든 간에, 인간이 아닌 어느 생물도 인간에게 만물의 영장에서 걸어 나오라고 요청했던 적이 결코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스스로 그렇게 선택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이러한 투쟁은 21세기 초에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기후 변동은 인류의 역사가 생긴 이래로 인간이 자연을 오랫동안 혹사시켜 왔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21세기 인류가 참혹하게 겪게 될 기후 변동은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발생하고 있는 자연현상이 결코 아님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재의 기후 변동은 인류가 개발과 성장의 이름으로 '자연의 권리'를 참혹하게 짓밟게 되면서 나타난 결과이며, 그것은 부메랑이 되어 인류 사회의 참담한 붕괴를 촉발시킬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기후 변동은 사람의 몸으로 비유한다면 몸살과 같다. 그런데도 인류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개발과 성장을 계속 추진해 나간다면, 기후 변동은 더욱 심해져 지구는 심한 독감으로 면역력을 상실하게 돼 생명력을 다할 수밖에 없다. 기후변동은 인류에게 기존의 개발과 성장 방식을 수정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1980년대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이미 예고편으로 다가왔음에도 인류는 그 후로도 원자력발전을 계속 추진하여 왔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본의 원전 사태는 지진과 원전 사고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경우 겪게 될 인류의 운명에 대한 또 다른 예고편이다. 이런 예고편에 대해 콧방귀도 뀌지 않는 몇몇 나라들은 원자력 발전소를 계속 설립하면서 운영하려고 한다. 앞으로 기후변동과 원전 사고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경우, 인류의 미래는 몇몇 과학자들이 이미 예고했듯이, '대멸종'으로 이어질 것이다.
한국을 포함하여 동아시아의 지질학자들이 예고하고 있는 대로 백두산이 화산 폭발을 한다면, 이는 동아시아는 물론이거니와 지구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가져올 수 있는 지질학적 사건이 될 것이다.
특히, 백두산이 화산 폭발할 경우에 북한의 핵개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에서 멀지 않다는 점에서, 이는 동아시아의 안녕과 평화를 크게 위협하는 직격탄이 될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중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원자력 발전소들이 백두산 화산 폭발에 영향을 받는다면, 동아시아는 물론이거니와 인류가 겪게 될 파국적인 재난의 양상과 결과는 더 이상 생각하기조차 싫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기후 변동, 원전 사고, 백두산 화산 폭발은 그냥 생각해 볼 수 있는 시나리오가 결코 아니다. 코앞에 다가올 사태이다. 일본에서 지진이 원전 사태로 이어진 것처럼, 기후 변동이 백두산 화산 폭발을 재촉하여 원전 사고로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자연은 지금 인류에 대해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나의 권리를 돌려달라."
'백두산이 화산 폭발하는 때, 북한의 김정일 체제가 붕괴되는 때, 그리고 한국의 차기 정부로 권력이 이양되는 때' 그 하나만으로도 크나큰 사건이 어우러져 우연히도 동시다발적으로 같은 시기에 일어난다면, 대한민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물론 이렇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통일을 준비하고 '한반도 선진화'를 주창하기 이전에, 지금 더 시급히 필요한 것은 기후 변동과 지질에 대한 공부이다. 고전과 영어보다도 더 중요한 공부가 우리 앞에 던져졌다. 이것이야말로 '자연의 권리'를 되돌려주기 위한 첫걸음이다.
이종찬(아주대 교수·문화디자이너)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