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내 삶에도 봄이 올까요…' 루게릭 환자 김준호 씨

입력 2011-04-13 09:20:11

몸뚱이가 더 이상 굳지 않게 이 봄도 멈췄으면…

"제 인생에도 봄날이 올까요." 봄날의 따뜻한 햇살 앞에서 루게릭병 환자 김준호(가명'37) 씨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김 씨는 자신의 몸이 더 이상 굳지 않도록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채근기자

11일 오전 경북 경주의 한 농촌 마을 한옥집. 마당에 있는 파지가 봄비에 젖었다. 마당 곳곳에 쌓여있는 파지 더미는 지난달부터 김준호(가명) 씨가 길에서 주워온 것이다. 그는 촉촉히 땅을 적시는 봄비를 마당 귀퉁이에 앉아 가만히 바라봤다. '저 비처럼, 언제까지 나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걸까.' 올해 서른 일곱, 한창 미래를 꿈꿔야 할 나이에 그는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이 병에 걸리면 운동세포가 사라져 온몸이 굳는다. 말을 할 수 없게 되고 숨이 멈추고, 이후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다.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와 함께 그의 얼굴에서도 비가 내렸다.

◆아침이 두려워요

사람들은 아침을 기다립니다. 화창한 햇살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 아침이니까요. 저는 아침이 두렵습니다. 매일 눈뜰 때마다 제 몸이 통나무처럼 뻣뻣하게 굳어간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죠. 이제는 몸을 일으키는 것도 힘에 부칩니다. 몸을 엎드려서 오른팔로 바닥을 지탱해 자리에서 겨우 일어납니다. 왼팔 마비 증상이 심해지면서 왼손과 왼팔이 제 몸을 떠난 것 같아요. 요즘 단추가 달린 옷을 입지 않습니다. 손가락에 힘이 빠져서 혼자서 단추를 채울 수 없어요. 64세의 어머니께"단추를 채워 달라"고 말하는 것이 못내 죄송해 이제 단추가 있는 옷은 방 한 구석으로 치웠습니다.

식사 시간은 또 다른 고욕입니다. 젓가락질은 이제 꿈같은 일이 됐네요. 요즘엔 밥을 삼키는 것도 힘들어요. 목 부분에서 마비가 시작됐는지 식사가 끝나면 매번 토합니다. 한 달 만에 6㎏이 빠지더군요. 음식 맛은 오래 전에 잃었습니다. 오늘도 생존을 위해 억지로 밥알을 삼킵니다. 병원에서는 "온몸이 천천히 굳어갈 것"이라고 했는데 병은 제 삶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저를 쫓아옵니다.

요즘에는 화장실에 가는 시간도 아끼고 있어요. 볼일을 보기 위해 바지 단추를 열고, 다시 바지를 올리는 일마저 힘든 일이 됐기 때문이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씩 줄어드네요. 앞으로 숨도 제 힘으로 쉴 수 없겠죠. 아아! 아직은 인정할 수가 없네요.

◆저는 어둠을 찾습니다

해가 지고, 짙은 어둠이 깔리면 바깥으로 나섭니다. 누군가 저를 볼까봐 두려워요.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뒤 직장도 그만뒀습니다. 7년간 목공소에서 일했는데 지금은 망치를 들 힘이 없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중학교를 졸업한 뒤 자동차 부품 공장, 막노동 등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이 몸뚱이 하나만 믿고 살았는데, 이제 웃음만 나네요. 매일 오후 9시가 되면 저는 거리를 걸어요.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는 파지를 줍습니다. 동네에 버려진 종이들을 두 팔로 안아 올립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어서 몸을 굽혀 두 팔로 종이를 긁어 모읍니다. 그렇게 주워온 파지들이 마당 앞을 가득 채우네요. 버려진 종이와 제 삶, 왠지 닮아보입니다.

제가 어머니와 함께 사는 집은 월세 4만원짜리 단칸방입니다. 맘씨 좋은 주인 덕분에 보증금도 없이 이곳에서 지낼 수 있게 됐어요. 4월, 완연한 봄이지만 우리집 앞에는 아직도 연탄이 쌓여 있어요. 하루에 연탄 12장을 써도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 병에 걸린 뒤 어머니만 생각하면 제 가슴 속에는 지난 겨울의 칼바람보다 더 시린 바람이 붑니다. 우리 어머니는 10년 전 자궁암 수술을 받고 항상 약을 달고 사십니다. 지난해 11월 큰 형이 뇌출혈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거든요. 막내 남동생은 큰 형의 죽음을 뒤로 한 채 집을 나가 지금도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일찍 남편을 잃고 아들까지 앞서 보낸 어머니는 한동안 말을 잃으셨어요. 그런데 나까지 무서운 병에 걸렸다니. 그런 어머니께 더 큰 짐이 된 저는 못난 아들입니다.

◆제 삶에도 봄이 올까요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뒤 대인 기피증이 생겼어요. 밤늦게 움직이는 것도 사람들 눈을 피하기 위해서 입니다. 요즘에는 동네 사람들이 "몸은 좀 괜찮냐"고 묻는 것도 부담스럽습니다. 제 인생의 치부를 들켜버린 느낌이라고 할까요. 병원에서는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해야 입 주변 근육이 굳는 속도가 느려진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밤에 파지를 주으러 가는 길에 뒷산에 올라가요. 그리고 제 맘 속에 담아뒀던 말을 큰 소리로 외쳐요. "나는 살고 싶다!" 내가 나에게 말을 거는 유일한 시간입니다.

이제 이 병을 인정해야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어 인터넷에서 '루게릭병'을 검색했습니다. '인구 10만 명당 대략 2, 3명이 걸린다' '전신이 마비돼도 눈 주위 근육은 마비되지 않는다' '정신은 그대로다' 등 수많은 정보가 인터넷에 떠돌아다닙니다. 그러다가 전 프로농구 코치였던 박승일 씨에 대해서 알게 됐어요. 그 사람도 저와 같은 병을 앓고 있더군요. 온몸이 마비돼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눈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분이었어요. 병을 애써 외면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박승일 코치에게 '루게릭병을 인정하는 법'을 묻고 싶어집니다.

앞 집에 활짝 핀 벚꽃이 우리집 담장으로 넘어왔네요. 벚꽃이 떨어지면 저 나무는 내년 봄을 기다리겠죠.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어요. 내년 봄이 오지 않게, 제 몸이 더 이상 굳지 않게요.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매일신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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