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럼] 경험이 남긴 교훈

입력 2011-04-01 10:44:20

올봄 식목행사는 익히 알고 있는 시점보다 보름이나 앞당겨졌다. 온난화 때문이란다. 인간의 과소비가 지구의 재난을 불러왔다지. 일부의 탐욕 때문에 온 세상 동식물이 위태롭게 될 줄이야.

어느 선생님은 항상 비누로 머리를 빠신다. 감는 게 아니란다. 내 눈에 멋스럽고 풍성한 곱슬머리인데, 그분은 씩 웃으며 덥수룩하기에 빨아야 한다며 비누를 고집하신다. 그 흔한 샴푸나 린스는 절대 사절이다. 또 집에서는 좌변기에 앉아서 소변을 보신다. 딸만 둔 아비가 공용 공간을 정갈하게 쓰는 최소한의 노력이라고 하셨다. 거창한 구호보다 작은 실천으로 보여주신다. 자연에 대한 그리고 가족에 대한 배려에 숨은 뜻이 있음을 나는 잘 안다.

일본 도후쿠(東北) 지방에 몰아닥친 지진과 지진해일의 결과가 너무 참혹하다. 그날 걱정스런 마음에 일본의 벗과 유학 중인 후배에게 연락을 했다. 겨우 연결된 전화로 안부를 확인한 다음에야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그것도 잠시, 뒤이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사고 소식에 내내 뉴스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참혹한 상황에도 아픔을 삼키고 질서를 지키려 노력하는 일본인들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뉴스가 많았다. 일본인들이 겪어온 역사적 경험 때문이라는 조금 식상하고 담담한 평가도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생명과 터전을 잃은 큰 아픔은 당장 해결할 수 없을지라도, 피난소에 머무는 이재민의 삶이 나아지고 있다는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았다. 구호품은 쌓여만 있을 뿐 이재민들에게 바로 전달되지 못한다. 이에 더해 원전을 운영하는 도쿄전력의 거짓말과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일본 정부의 무능력도 서서히 한계에 이르고 있는 듯하다. 어떤 기자는 이러한 상황을 왜 참고만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자연의 강력한 힘에 맥없이 휩쓸리는 나약한 인간의 운명은 어쩌면 아니 너무나 당연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처하는 인간의 시스템은 삶에 기반을 두고 있어야 이성적이고 합리적일 것이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행정조직에 막혀 구호가 지체되고, 얄팍한 경제적 이유 때문에 원전 사고가 확대되었을 것이라는 언론보도는 몹시 서글프다. 이제 일본의 원전 사고는 일본열도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 사안이 되었다. 구호금을 내기 위해 고사리 손으로 전화번호를 누른 아이들에게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일본 이재민과 세계인들을 위한 일본정부의 배려가 정녕 어려운지 묻고 싶다.

이 시점에 우리의 경험도 되돌아보아야겠다. 오늘날 대구는 문화도시를 자부하고 있으나, 한국전쟁 시기에 발생했던 한 사건은 이를 단번에 무색하게 만든다. 1947년 5월 15일에 문을 연 대구시립박물관을 기억하는 이가 이젠 거의 없을 듯하다. 조선시대를 거치며 영남을 대표하는 도시가 된 대구에는 일제강점기에 부유한 일본인들이 다수 있었다. 이 일본인들 중 일부는 재력을 바탕으로 문화유산 수집에 열을 올렸다. 많은 귀중한 문화유산이 빠져나가 오늘날까지 일본에 남아있지만, 광복과 함께 일부는 압수되어 이 땅에 남았다. 이에 국립박물관의 도움을 받아 일본인들에게서 압수한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대구시립박물관은 문을 열었다. 하지만 곧이어 터진 한국전쟁 때문에 국가는 국보 2점을 안전지역에 피란시켰고, 대구시는 이것을 제외한 모든 전시품을 인접한 창고에 보관하였다.

불미스런 사건은 시립박물관이 임시로 문을 닫고 있을 때 이루어졌다. 시립박물관 개관을 주도했던 유지와 관리를 맡은 말단 공무원, 그리고 이를 총괄한 고위 관료들이 범죄를 저질렀다. 이들은 야금야금 박물관 소장품을 상납하거나 시중에 내다 팔았다. 한국 박물관 역사에서 치욕스런 이 범죄는 전문 인력을 갖추지 않고 문만 연 잘못에서 이미 예견된 것일 수도 있다. 도난당한 문화유산은 서울의 S대학과 개인 소장가들에게 들어갔으나 수사과정에 대구시의 적절하지 못한 대처와 비협조로 결국 회수되지 않았고, 도둑들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

다시 시립박물관을 열 생각이 없었던 대구시는 겨우 남은 것을 1957년 2월 2일 경북대학교에 황급히 위탁해버렸다. 3년간 문을 연 대구시립박물관의 짧은 운명은 이렇게 마감되었다. 만약에 선량한 관리의무에 충실하였다면 대구시립박물관은 전통적인 역사도시가 아닌 일반도시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박물관으로 역사에 기억되었을 것이다.

함순섭(국립대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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