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문화사대주의

입력 2011-03-30 07:11:50

미제나 일제면 무조건 좋다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미국산이나 일본산 제품에 대한 신뢰는 높다. 반면 중국산 제품에 대해서는 불신이 높은 편이다. 싸긴 하지만 품질이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가격이 싸기 때문에 품질이 떨어지고,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격이 싼 것이다. 농수산물에서부터 공산품에 이르기까지 가격을 제대로 낸다면 품질이 좋은 중국제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비단 공산품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화상품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미국의 뮤지컬은 무조건 우리나라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또 서울의 연극은 지방보다 당연히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는 다른 사회권의 문화가 자신이 속한 문화보다 우월하다고 믿고 자신의 문화를 업신여기는 일종의 문화사대주의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거나 느낀 것이 아니지만 누가 좋다고 하면 그 의견을 비판 없이 따르며 쉽게 휩쓸린다.

현재 대구에는 문화사대주의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공연이 점차 늘고 있다. 서울 대학로에서 공연한 연극이나 뮤지컬이 직수입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 작품이면 무조건 좋다고 믿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열게 하는 공연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공연을 보며 특별한 스타 배우도 없지만 서울 공연에 서울 배우이니 잘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물론 기획사의 홍보를 믿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자본의 논리 앞에 믿음이란 참 가벼울 뿐이다.

물론 서울의 연극과 지방의 연극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하지만 분명한 등급이나 순위를 매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서울 작품이라고 해서 무조건 우수한 것도 아니고 대구 작품이라고 해서 무조건 수준이 서울 작품보다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성공하고 대구에 내려왔다는 서울 작품이 무조건 우수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작품성과 재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어서 엄청난 관객을 동원한 일명 대박 작품도 몇 편 있지만 그 외 다른 서울 작품들은 그야말로 어정쩡하다.

서울에서 공연할 때 작품성을 크게 인정받은 것도 아니고 관객몰이를 한 대박 작품도 아닌 조금은 애매한 작품들이 대구에 내려오는 것이다. 더 심각한 상황은 서울에서 내려오는 공연의 경우, 흔한 말로 서울에서는 A급이 아니었음에도 대구에서는 A급으로 포장될 뿐만 아니라 서울 공연 당시의 노련한 배우가 아니라 순회공연용 신인배우를 무대에 올린다는 사실이다. 대구 관객은 이래저래 돈벌이수단으로 이용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같은 작품임에도 지방 공연은 서울 공연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공연을 선보이곤 한다.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많은 사람이 문화사대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서울 공연이면 무조건 좋다는 생각을 버리고 문화소비자로서 이성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안희철(극작가)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