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은 나와 세상이 나누는 대화이다. 나아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다. 다양한 세상의 모습을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과정이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모르고 어찌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논제에는 세상에 대한 의문들이 제시된다.
사실 논제를 분석할 때 대부분 학생들은 주어진 질문에만 집착한다. 표면적으로 무엇을 요구하는가에 일방적인 관심을 가짐으로써 질문 이전에 전제하는 내용을 놓칠 수가 있다. 전제란 말 그대로 논증을 할 때 그것으로부터 출발하여 결론을 얻을 수 있는 명제를 말한다. 수학이나 논리학에서 전제란 거짓일 수 없는 명제이다. 의외로 학생들이 쉽게 놓치는 부분이 바로 '전제'에 해당하는 문장이다. 논술은 나름대로 자유로운 답을 열어 놓고는 있지만, 출제자의 의도에 맞는 답안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출제자가 전제하고 있는 내용을 찾아내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전제가 되는 내용을 찾아낸 다음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전제란 말 그대로 출제자가 전제하는 것이므로, 학생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은 논술의 전제는 학생이 아니라 출제자가 몫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전제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논제를 하나 살펴보자.
다음 네 개의 제시문은 하나의 공통된 주제와 관련된 글이다. 그 주제를 말하고, 제시문 간의 연관 관계를 설명하시오. 그리고 그 주제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시오.(고려대, 2007)
위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내용이 있다. 제시문들이 '하나의 공통된 주제와 관련된 글'이라는 점이다. 제시문들은 기본적으로 '예술의 효용'에 관한 글이지만 개별적인 내용은 다소 상이한 글이다. 먼저 찾아야 할 내용은 공통된 주제이다. 차이는 다음 질문인 제시문 사이의 연관 관계에서 다루어야 한다.
논제를 분석할 때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논제 분석의 과정을 단지 머릿속에만 담아 두지 말라는 것이다. 논술문 쓰기에 몰두하다 보면 처음 논제 분석에서 생각했던 필수적인 요구 조건들을 망각하여 전체적인 글의 내용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거나 반드시 담아야 할 내용을 놓치기가 쉽다. 따라서 논제를 분석할 때 반드시 논제의 요구 조건에 번호를 붙여 가며 구체적으로 파악해 두는 작업이 필요하다. 단, 여기서 주의할 점은 요구 사항들의 논리적 연결 관계들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래 논제를 살펴보자.
①나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의 느낌과 생각을 과연 이해할 수 있는가? 아래 ②제시문들을 비교 분석하여 어떤 어려움들이 있는지 설명하고, ④그러한 어려움이 극복될 수 있는지 ③사회현실의 예를 들어 논하시오.(연세대, 2007)
①은 이 논술문에서 요구하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결국 이 문제는 나와 타인의 소통 관계에 대한 질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 자체가 본질적인 의미를 지닌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②③④를 참고하면 분명 어려움은 존재하지만 그 어려움은 극복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서로 다른 존재의 느낌과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는 방향으로 정해져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그런 방향으로 글을 쓰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글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방향으로 잡으면 ③④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난 다음, ②제시문에 주어진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④의 구체적인 예를 통해 ③을 논하면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볼 때 논제의 요구 사항에 따라 논술문의 단락이 구성된다. 나름대로 요구 사항을 재구성하여 논술문을 작성할 수도 있지만 통합교과논술은 개별화된 질문이 주어지기 때문에 구태여 그런 모험을 할 필요는 없다. 논제 분석은 논술문 작성의 시작과 끝이다.
한준희(대구통합교과논술지원단, 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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