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 '3·26 기관총'과 부자 공직자들

입력 2011-03-28 10:49:53

엊그제 신문에 두 가지 비교되는 기사가 한 지면에 나란히 실렸다.

하나는 천안함 순직 장병 어머니가 국민성금으로 기증한 '3'26 기관총' 이야기. 또 하나는 우리나라 '국회의원, 장관, 고위 법관 등' 3부 고위 공직자 2천305명의 평균 재산이 10억~30억 원이 넘고 지난 1년 새 대부분 더 늘어났다는 기사다. 두 기사를 놓고 한번 생각해 보자.

1억 808만 8천원의 성금이 18정(挺)의 기관총으로 바뀌어 눈앞에 나타났을 때 느낀 감상은 말 그대로 국민적 감동이었다. 거꾸로 2천305명 대한민국 일부 고위 공직자들의 천문학적인 '돈' 이야기가 던져주는 것은 감동보다는 박탈감 쪽이 더 크다. 가진 계층에 대한 존경이나 신뢰보다는 거부감이랄까 쉬 승복하기 어려운 저항감 같은 것이다. 단순히 덜 가진 자, 못 가진 계층의 상대적 빈곤감에서 나온 질시나 적대감이 아니다. 다시 말해 가질 만한 자가 가졌느냐는 데 대한 의구심, 그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얼마나 있었느냐에 대한 부정적 정서 같은 거다. 누구나 다 평균 수십억 원대의 자산을 가지고 자본주의의 질 높은 삶을 향유하는 것이 박탈감이나 따지고 질시와 배타적 감정으로 갈등하는 것보다는 분명 낫다. 그런 지향점을 향해 함께 땀 흘리고 서로 북돋우며 상생해 나가야 하는 것도 맞다. 문제는 부(富)의 편중과 함께 고위 공직 계층에 오블리주 정신이 있는가, 없다면 최소한 국민 감동을 이끌어 낼 노력이라도 하고 있느냐다.

이번 3'26 기관총 이야기를 로마의 포에니 전쟁에 대입(代入)해 보자. 강적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로마가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지도층과 가진 계층의 오블리주 정신이었다. 당시 막대한 전쟁 비용을 모으기 위해 전쟁세(稅)를 부과했을 때 원로원 지도자들만 경쟁적으로 내고 서민들에겐 부과를 하지 않았다. 그 뒤 계속된 전쟁으로 전시국채(戰時國債)까지 발행했어야 했을 때도 원로원과 정부 요직자들만 사도록 했다. 서민들은 제외시켜 줬다. 고위 집정관들은 다투어 전투에 나갔고 13명이 전사했다. 그리고 승리했다.

그러나 천안함 전쟁을 치른 우리는 젊은 병사들만 목숨을 잃었고 기관총 값은 자식을 잃은 평범한 어머니가 냈다. 천안함 이후 1년 동안 우리나라의 집정관이요, 원로원 의원격인 고위 공직자들은 재산만 불어나고 있었다. 어느 장관, 어느 국회의원, 어느 고위 법관도 기관총은 고사하고 권총 한 자루 사 보탰다는 사람은 없었다. 299명 의원 중 절반이 1억 이상 재산이 늘고 평균 재산이 36억 원이라는 입법부는 후원금(청목회) 받아먹는 뒷주머니 돈줄을 합법화시키는 법안이나 만들려고 시도했었다. 36억 원도 모자라 더 채우려 들었다. 평균 재산 11억 원을 가졌다는 행정부 고위 공직자 세계서는 상하이 치정극이나 벌이며 기관총 살 수 있는 돈을 중국 여자의 치마 밑에 뿌렸다.

부장판사 이상 고위직 평균 재산이 20억 원이라는 사법부에서도 남의 재산 관리를 맡은 고위 판사가 제 동생과 개인 운전사 취직 비리를 저지르며 국민 신뢰를 깼다. 어디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없었다. 물론 일부의 이야기라 할 수 있고 나라 잘 꾸린 덕에 주식 오르고 가진 집이 저절로 올라 재산 늘어난 게 무슨 죄냐는 얘기도 틀리진 않다. 그러나 주식 한 장 없고 전셋집 장만조차 힘겨운 서민, 하위 공직자들도 지난 한 해 딴 나라에 살지는 않았다. 똑같이 이 땅에서 숨 쉬고 세금 내고 열심히들 일했다. 그래도 재산 늘기는 고사하고 살림 형편은 1년 전보다 더 힘겨워들 한다.

그래서 서민 어머니의 기관총과 부자 지도층들의 재산 늘어났다는 대비된 기사는 이런 의문을 던진다. 만약 우리에게 포에니 같은 전쟁이 난다면 남'북한 어느 쪽이 로마가 될 것인가? 대통령과 합참의장이 '도발하면 100배로 때리겠다'고 아무리 큰소리쳐 봤자 국민들 가슴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감동을 담아주지 못하면 공염불이 된다. 서해 바다와 연평도에서 젊은 목숨들이 스러져 갈 동안에도 억대 재산이 불어나고 있었던 지도계층이 불어난 재산 중에 5%만 떼다 국방을 위해 내놓았다면 엊그제 대한해군 초계함에는 2천 정 가까운 기관총이 걸렸을 것이다. 한 국가의 국부(國富) 30%를 1%의 계층이 독차지하면 민중혁명이 일어난다는 학설이 있다. 수치가 조금 다를 수도 있다. 3'26 기관총을 보며 부자 공직자들이 새겨야 할 게 있다. 어떤 권력과 재산도 지도자다운 오블리주 없이는 지켜지지 못한다는 무서운 사실을….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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