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악몽이면 좋을 대재앙이 발생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전역이 슬픔에 잠겼고,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가 세계를 핵 재앙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경제대국 일본이 지진과 쓰나미 앞에 맥없이 쓰러진 것이다.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로도 상상하기 힘든 자연재해에 직면한 일본의 참상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한류 스타를 필두로 한 한국사회의 기부 행렬과 국제사회의 지원이 위로가 되어 하루빨리 고난의 행군에서 벗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다. 폭발 당시 자진해서 남았던 원전 직원은 물론이고 '최후의 결사대'에도 지원자가 몰리고 있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국가적 재난을 당한 후 남을 먼저 배려하고 질서를 지키며 혼란 없이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의연한 모습이 놀랍고, 그들의 공동체 정신에 관심이 간다. 그런데 모 일간지의 "세계가 긴장하는 혈투…자식 없는 279명 전사가 송전선 잇는다"는 제목의 기사는 허접스러울 뿐 아니라 공공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초개처럼 버리려는 그 희생의 의미를 희석시킨다. 모든 생명은 이 땅에 단 한 번 나서, 살다가, 가고, 되돌릴 수 없는 것인데, 이웃을 위해 자기 생명을 단절시키는 일에 자원하는 것은 처한 환경에 상관없이 그 자체로 고귀할 뿐이다.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위해 20년째 일본대사관 앞에서 해오던 수요 집회를 추모 집회로 대신한 자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흘린 애도의 눈물은 참으로 숭고하다. 죄는 밉지만 인간은 미워하지 않는 높은 인류애를 구현한 것이다. 가수 김장훈도 "독도는 '가시'와 같지만 지진 피해와는 별개"라며 진심으로 애도했다. '동해와 독도 문제는 팩트이고, 동일본 대지진은 휴머니즘'이라는 그의 명쾌함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우리로 하여금 윤리적 만족감을 갖게 한다. 듣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미담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는 "일본 대지진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 무신론, 물질주의로 나가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라는 요지의 발언으로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자신의 트위터에 "일본 대지진으로 사망'실종만 2천500여 명, 연락 불통 만여 명입니다.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고 있습니다. 한반도를 이렇게 안전하게 해주시는 하느님께 조상님께 감사드립니다"라는 글을 올려 누리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웃나라의 참혹한 재난을 자신의 종교, 정치관의 잣대로 해석하여 이용하는 소위 일부 지도자들의 부적절한 태도가 우리 마음을 씁쓸하게 만든다. 자고로 연민과 사랑은 남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 보고 이해하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가르침에 따르면, 지금은 아파하는 일본인의 사정을 먼저 돌아볼 일이지 자신의 종교나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는 얄팍함을 보일 일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품격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것이다.
새삼 신영복 선생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들이 잊고 있는 것은 아무리 담장을 높이더라도 사람들은 결국 서로가 서로의 일부가 되어 함께 햇빛을 나누며,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도운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동일본 대지진 참사를 당한 일본인의 처지에 서서 함께 비를 맞는 인류애를 발휘할 때다. 재앙에는 슬픔과 눈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자본과 물질문명은 허망하게 무너졌지만 사람을 사랑하는 인(仁)의 정신으로 극복하는 재앙 뒤에는 기쁨도 있고, 감동도 있다. 인간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다시 깨닫는다. 나의 또 다른 이름인 이웃이 아파하고 있는데 지금 나는 있어야 할 곳에 제대로 있는지 자성하며 삶을 추스른다.
문창식(간디문화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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