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남희의 즐거운 책 읽기] 부르디외 & 기든스 /하상복 /김영사

입력 2011-03-10 14:02:01

세계의 두 석학이 펼치는 지식의 향연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식인 부르디외와 영국을 대표하는 지식인 기든스가 만났다. 그들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세계화에 대한 각기 다른 진단과 처방을 내놓는다. 김영사가 펴낸 '지식인 마을' 시리즈 '부르디외 & 기든스'를 읽으며 세계화의 두 얼굴을 만난다.

"해고와 임시고용 등 금융시장에 가해지는 구조적 폭력은 다소 장기간에 걸쳐 자살, 비행, 마약 복용, 알코올 중독과 크고 작은 일상적 폭력들로 그 대가를 치른다."

부르디외는 경제성장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되기에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희생이 너무 크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인해 노동자들이 언제 어떻게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공포감을 일상적으로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수록 사회는 소수의 부유한 사람들과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로 구분되는 양극화로 치닫게 된다.

부르디외는 1993년 출간한 '세계의 비참'이라는 책에서 프랑스와 미국의 빈민가를 대상으로 한 인터뷰를 통해 두 나라의 사회적 양극화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를 보여주며,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사회적 빈곤과 양극화에 대해 애써 눈감고 있음을 매섭게 비판한다. 그는 이러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불길을 막기 위해 '맞불'을 지필 것을 역설한다. 부르디외가 생각하고 실천했던 맞불의 구체적인 전략은 무엇일까? 첫째는 지배의 논리라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숨은 본질을 고발하는 것이고, 둘째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하는 세력들의 국제주의 연대를 조직하는 일이다.

"세계화는 이제 외부에서 불어오는 변화의 바람이 아니다. 세계화는 이미 우리의 생존을 규정하는 흐름이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방식 그 자체, 즉 우리가 숨쉬는 호흡, 혹은 마시는 공기다"라고 말하는 기든스의 세계화에 대한 생각은 부르디외와 완전히 다르다. 정치'경제적 관점에서만 세계화를 바라보거나, 긍정과 부정이라는 이분법적 잣대를 함부로 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기든스는 세계화는 정치'경제적 영역만이 아니라 문화, 의사소통 관계, 가족 관계 등 전반에 걸쳐 진행되는 변화이며, 그러한 변화는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를 동시에 갖고 있다고 강조한다.

"행복은 운이 좋거나 우연한 기회의 산물이 아니다. 행복은 외적 사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 행복은 준비하고 배양해야 하는 조건이다. 그것은 외부 세계보다는 내적 세계의 통제에 의거한다. 내적 경험의 통제 방식을 배운 사람은 삶의 질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이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지름길이다." 기든스는 기존의 복지와 대비되는 의미에서 '능동적 복지'를 제창하는데, 능동적 복지가 운영되는 국가를 '사회투자국가'라고 부른다. 이 국가는 물질적 지원보다는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더 중요하게 고려한다.

기든스가 그리고 있는 새로운 사회모델 속에서는 '삶의 정치' 또는 '생활 정치'가 중요하게 대두된다. 삶의 정치란 '해방의 정치'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해방의 정치가 생산력 증대를 통해 물질적 풍요를 실현함으로써 행복을 꿈꾸는 정치라면, 삶의 정치는 물질적 관심을 넘어, 정신적 가치의 고양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삶의 정치 속에서는 자아성찰, 자아실현, 교류, 의사소통 등 질적인 삶의 가치가 중요하게 고려될 것이다.

프랑스의 부르디외가 '맞불'로 불리는 세계화 저항 전략을 실천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면, 기든스는 유토피아적 현실주의로서 '제3의 길'이라는 세계화 적응 전략을 실천하기 위해 영국 노동당 정부의 정책 고문으로 활동함으로써 두 사람의 인식과 실천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우리의 생각과 일상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세계화라는 현상에 대해 세기의 지식인들이 벌이는 가상의 논쟁을 읽으며, 지식의 즐거움과 현실의 묵직함을 함께 맛본다.

용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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