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남희의 즐거운 책읽기] 프로이트, 심청을 만나다

입력 2011-02-24 14:37:27

고전소설 통해 '나'의 심층 상처 발견해 치유

문학치료학이라는 학문이 있다. 문학치료학에서는 사람마다에 깃들어 있는 자기 서사 능력을 중요시한다. 건강한 자기서사를 갖추는 것이 건강한 정신적 삶을 살아나가기 위한 핵심 요건이라고 본다.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우리는 주인공이나 주요 등장인물에 자신을 비추어본다. 내면에 크고 작은 심리적 질병을 지닌 채 고통을 받거나 고통을 유발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그들의 내면 깊은 곳에서 작동하고 있는 '건강하지 못한 서사'를 들여다보면서 과연 우리는 그로부터 자유로운지를, 혹시 그것이 우리 자신의 모습은 아닌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고전연구자 신동흔 등은 좧프로이트, 심청을 만나다좩에서 고전소설 속 인물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들을 괴롭히는 마음의 병이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겉으로는 온순하고 착한 아이였지만 마음속에는 새엄마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키워 마침내 귀신이 되어버린 장화홍련,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피해의식에 시달린 홍길동, 반사회적 성격장애자 변강쇠, 자신은 돌보지 않고 부모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강박적 책임의식에 사로잡힌 심청 등 그들이 분석한 고전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고전소설에 대한 색다른 접근이 흥미롭다. 부모노릇의 중요함과 어려움을 조금은 알아서일까, 그중에서도 '자식을 망가뜨린 어느 아비의 마음병'이라는 제목의 「한중록」 부분이 더욱 마음에 닿아온다.

「한중록」은 조선의 21대 임금인 영조가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 속에 가두고 7일 만에 굶겨 죽인 역사적 사건을 영조의 며느리이자, 사도세자의 아내인 혜경궁 홍씨가 자서전적인 기록으로 남긴 글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사도세자는 영조의 아들로 태어나 27년 동안 참으로 불행한 삶을 살다간 인물이다. 어려서는 늘 불안과 공포에 떨었으며 자라서는 정신병과 반사회적 행동을 보이는 비행 청년이 된 것이다. 왜 이런 비극적인 상황이 일어난 것일까?

「한중록」에 따르면 영조는 사도세자를 태어난 지 100일 만에 부모 처소와 멀리 떨어진 곳에 보내 나인들의 손에 키웠다. 그리하여 사도세자는 부모와의 정서적 유대감, 애착관계 형성이 잘 되지 못했고, 가끔 만나면 늘 질책하고 꾸중하는 아버지가 무서워 두려워하며 자아가 위축되었다.

불안과 공포, 억울함과 분노 속에 성장한 사도세자는 마음의 병을 얻어 스무 살이 넘으면서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마침내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되었다. 그러면 아버지 영조는 왜 아버지 노릇을 그렇게밖에 하지 못한 것일까? 영조는 요순시대의 치세를 꿈꾸는 야심 많은 임금이었지만, 애증과 편집과 금기가 유난히 심해 상식적이지 못했다고 한다. 「한중록」에 묘사된 영조의 행동은 강박장애의 전형적인 행태를 보여준다. 영조는 왕위를 잃을까 불안해하면서도 왕위에 대한 집착이 드러날까 두려워하였으며, 어머니의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사랑받으며 좋은 경험을 쌓은 남자아이는 사회적으로도 성공하고, 자신도 좋은 아버지가 되어 아들과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고 한다. 아들은 아버지를 보며 남성다움을 배우고, 아버지의 격려는 아들에게 힘과 자신감을 준다. 사도세자라는 자식을 망가뜨린 것은 결국 영조가 앓고 있는 마음의 병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춘풍전」에서는 허용적 양육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춘풍은 어린 시절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고이 자라다가 부모가 갑자기 죽자 재산을 마구 탕진하며 허랑한 삶을 살게 된다.

춘풍은 기생 추월을 만나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지고 나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현명한 아내 덕분에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고전소설 속 인물들의 상처를 통해 책을 읽는 '나'의 심층에 있는 상처를 발견하고 치유하는 것이 이 책의 궁극적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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