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환의 세상보기] 일본은 '친밀한 적', 군사 협력 신중하게

입력 2011-01-22 07:58:11

김관진 국방장관과 기타자와 도시미(北澤俊美) 일본 방위상이 10일 서울에서 양국 간 군사비밀보호협정과 상호군수지원협정 체결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일본은 한국과의 관계를 동맹으로까지 발전시킬 것을 희망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정치, 군사적으로 일본은 한국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군사 협력에 관한 논의는 새삼스런 것은 아니다. 미국을 축으로 한 한미동맹, 미일동맹은 한일 간의 간접 동맹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1997년 일본은 미일방위동맹의 구체적 실현 방안을 규정한 신가이드라인에서 한국을 작전 범위에 포함시켰다. 신가이드라인에 의하면 미군이 한반도에서 작전을 전개할 경우 일본은 후방 지원을 하게 되어 있다. 여기에서 후방 지원의 범위는 자위대의 한반도에서의 작전 전개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구도 하에서 우리의 안보를 지켜왔다.

일본과의 군사 협력이 한국에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왜 일본은 한반도에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것인가. 최근의 상황만을 본다면, 중국의 군사적 팽창에 대응하기 위해서 일본은 미일동맹에 더하여 한국과의 군사 협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만은 없다. 근대 이후 일본은 끊임없이 한반도에 대해 군사적 영향력 확대를 꾀해 왔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반도를 자국의 '이익선'(利益線)으로 규정해 왔다. 이익선이란 일본의 안전을 위해 절대적인 이해관계를 지니는 지역으로, 일본의 안전을 위해 한반도는 일본의 영향력 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일본의 국가 전략이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그리고 한일병합은 군사적으로는 이익선 확보를 위한 것이었다. 한국과의 군사적 협력 강화가 이러한 이익선 확보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발상은 아닐지라도 우리는 일본이 한반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정학적 속성마저 무시할 수는 없다.

또 한국인의 정서상으로도 일본과의 군사 협력 관계 강화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몇 년 전 일본의 방위대학교(한국의 사관학교에 해당)를 방문했을 때이다. 대학원 과정에 군사 교류의 일환으로 파견된 듯한 한국인 장교 몇 명이 공부하고 있었다. 방과 후 그들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적국에 유학을 와 있는 기분"이라고 했다. 일본은 한국 국민의 정서상 아직 '친밀한 적'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국가 간의 관계가 국민 정서로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현실적으로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도 일본과 보다 긴밀한 군사 협력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한국이 직접적으로 일본과 군사 협력을 강화하는 데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한일 간의 군사 협력 관계의 구축은 동북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이 군사적으로 중국을 적대시하는 결과를 가져와 동북아의 새로운 냉전 구조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중국과 북한, 러시아의 관계는 한층 밀접해지고, 남북한 관계는 경직될 것이다. 전체적으로 한반도 주변의 군사적 파고가 높아질 것이다. 어느 것도 우리에게는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일본만큼 중국(러시아도 포함)이 중요한 요소라는 점이다. 최근 세계적으로 화제를 부른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이라는 책 제목이 상징하듯 중국은 이미 세계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영토 분쟁에서 보듯이 중국은 동북아 정세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연평도 포격 훈련에 북한이 대응을 하지 않은 것도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의 영향력은 앞으로 계속 커질 것이며, 통일 문제를 비롯해 한반도 정세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을 적대시하는 '한일동맹'이 성립하게 되면, 한국은 중국에 대한 외교적 지렛대를 상실하게 된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를 가진 소국(小國)이 외교적 유연성을 상실하면 생존의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든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한국이 중국과 일본의 패권 경쟁에서 굳이 일본의 손을 들어주고, 중국을 명백한 적으로 돌릴 필요가 있는가. 한반도는 더 이상 일본의 이익선이 아니다. 독립 변수로서의 자국의 안전을 지켜가는 군사적 외교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이성환(계명대학교 교수·일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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