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대형사건·사고 '심리적 공황상태'
지난해 연초부터 새해까지 우리 사회는 전례없이 대형 사건·사고를 잇따라 겪으면서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지난해 3월 서해 백령도 앞바다에서 천안함이 침몰했고 11월에는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을 가했다. 분단의 상처가 또다시 터진 것이다. 또 지난 연말부터 구제역이 급속도로 확산돼 소와 돼지 140여만 마리가 매몰됐다. 연이은 대형 사건·사고로 우리 사회는 상처가 아물 시간도 갖지 못하고 있다. 물가불안이 더해지고 체감경기마저 악화돼 시민들은 심리적 피로감과 빠듯한 살림살이에 겹고통을 받고 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최근 터진 대형 사건·사고 피해 당사자들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못하고 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 피해자들은 육체적인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유족의 슬픔과 살아남은 자들의 트라우마(충격적인 경험 뒤에 오는 정신적 후유증)는 어느새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으로 자리 잡았다. 덩달아 터진 구제역으로 가축을 매몰한 농가는 망연자실한 상태다.
◇김호엽(50·고 김선명 병사 아버지)
"선명이가 살아있었다면 다음달 제대인데…." 김호엽 씨는 아들 생각에 말을 잇지 못했다. 천안함 침몰로 사랑하는 아들이 곁을 떠나자 가족들의 생활은 절망만 남았다. 김 씨는 "하루 몇 번씩 아들 얼굴이 떠오른다"며 "동생들도 오빠, 형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고 전했다. 천안함 생존자들이 김 씨를 찾아와 인사할 때마다 아들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김 씨는 "연평도 사건 때도 아들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며 "나에게 지난해는 서글픔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최종복(59·천안함 생존자 최광수씨 아버지)
최종복 씨는 무사히 제대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아들이 천안함 침몰 사건 충격에 시달리는 것을 보는 것이 가슴 아프다. 최 씨는 "그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뛴다"며 "광수가 사고를 당한 이후 어디를 가더라도 비상구를 확인하고 있다"고 걱정했다. 사고 당시 군은 생존자의 정신적 충격을 고려해 정신과 치료를 했지만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 최 씨는 아들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보냈다.
최 씨는 "아직 일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사람들은 천안함 사건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며 "유족들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도록 많은 이들이 힘을 써주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연평도 포격 부상자 김진권 일병(사진)
"하루빨리 병상에서 벗어나 외출해보는 것이 올해의 목표입니다."
연평도 포격으로 복부 관통상과 오른쪽 다리를 다친 김진권 일병은 힘든 상황에도 밝은 목소리로 올해의 소망을 말했다. 3일 종아리 살을 오른쪽 발에 이식하는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인 김 일병은 포격 당시 상황이 계속 떠오른다는 말로 정신적 충격을 전했다. 김 일병은 "밤에 잠을 쉽게 못 잔다"며 "가끔 수면제를 복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어머니 진문자(48) 씨는 "아직까지 엄지발가락 이외에는 감각이 없는 상태"라며 "끔찍한 한 해를 보낸 만큼 이제는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이정애(47·이민욱 일병 어머니)
아들이 연평도 포격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자 이정애 씨는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병실을 지키고 있다. 이 씨는 새해가 됐지만 여전히 병상에 누워 있는 아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이 씨는 "민욱이가 기분이 좋다가도 갑자기 우울해지는 등 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며 "더 이상 나빠지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 씨 만큼 가족·친척의 슬픔도 크다. 이민욱 일병에게 해병대를 권했던 외삼촌은 연평도 사건이 자신의 탓인 것처럼 느끼고 있다고 한다. 아직도 통증과 당시의 두려움으로 수면제 없이 잠을 잘 수 없는 이 일병을 보면서 이 씨는 "육체적인 상처보다 정신적 상처가 더욱 클 것"이라며 "영원히 당시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다"고 말했다.
◇한우협회 안동시지부 김창근 사무국장
김창근 씨는 구제역 때문에 집에 모시던 아버지 팔순 잔치도 제때 못 치렀다. 김 씨는 "우리 소가 구제역에 걸릴까봐 형제들에게 모이지 말고 팔순 잔치를 다음에 하기로 했는데 지난주에 구제역에 걸렸다"며 "가족 같은 소를 모두 매몰처분하니 앞으로 일이 막막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김 씨는 지난달 25일 구제역 백신을 맞췄다가 3일 구제역이 발생해 183마리 모두 매몰 처분했다. 답답함을 풀고 싶어도 이동제한에 걸려 다음주까지 집 밖으로 한발자국도 못 나가는 상황이다. 김 씨는 "안 그래도 집이 휑해서 울적한데 어디 하소연하러 나가지도 못한다"며 "빨리 구제역이 사라져야 다시 일어서기라도 할 텐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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