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가축은 모두 죽여서라도 청정국 지위를 유지해야 하고, 경기 가축은 청정국 지위를 버리더라도 백신 접종으로 버텨야 하는 것일까.'
구제역이 좀처럼 숙지지 않고 있다. 매몰 대상 가축은 소가 10만 마리, 돼지가 100만 마리에 육박하고 있다. 애꿎은 가축들이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한 채 마취제를 맞거나 산 채로 파묻히고 있다. 소, 돼지와 함께 생계를 이어온 축산농들은 가슴을 저미는 아픔을 느낀다. 살처분을 한 농가는 허탈감과 미래에 대한 암울함에, 인근 축산농들은 바이러스 불똥이 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경북 공무원들도 악전고투하고 있다. 구제역 발생 한 달이 넘도록 살처분 현장과 방역초소 근무로 추위와 함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여기다 안타까움을 더하는 것은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이다. 안동지역에 구제역이 발생하고 안동시와 경북도 공무원들이 방역에 비상이 걸렸을 때 중앙부처와 정치권은 '나 몰라라' 했다. 안동을 시발로 예천, 영주, 영양 등 경북 북부지역으로 급속히 확산됐을 때도 정부 대응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정치권과 중앙언론의 반응도 시큰둥했다.
하지만 경기도에 구제역 증상이 나타나면서 정부와 정치권의 태도는 급변했다. 구제역 감염 경로에 대한 책임소재도 구체적으로 거론됐다. 중앙언론도 냄비 끓듯 보도를 쏟아냈다. 그동안 금기시하던 백신 접종 필요성도 이즈음 제기됐다.
구제역 감염 경로에 대해 신중하던 정부는 경북에 이어 경기도에 구제역이 발생하자 곧바로 진원지에 대해 언급했다.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경기 양주와 연천에서 구제역이 확인된 다음날인 지난달 16일 "(경북) 농장주들이 베트남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돼 들어온 것을 구제역 발병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했다.
구제역은 지난해 1월 경기 포천에서 8년 만에 발생한 뒤 4월과 5월 인천, 충남'북에서 잇따라 발생했다. 베트남, 중국, 일본, 대만 등 주변에 구제역이 발생한 국가도 많다. 구제역이 발생국 여행객들로부터 옮겼다면 경기도나 다른 지역에도 여행객이 있을 수 있다. 경북에서 충청권 등 중간 지점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경기도로 바이러스가 감염됐을 개연성도 높지 않다. 유 장관이 구제역 감염경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시점과 배경에 의구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특히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구제역 백신 접종 시점이다. 농림부와 방역당국은 경북 전역에 구제역이 퍼질 때까지 '백신 접종 비용이 살처분 비용보다 더 많다' '세계동물보건기구로부터 청정국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수출에 큰 타격을 입는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하지만 경기도 5개 지역에서 구제역이 확인된 지난달 21일 입장을 급선회, 백신 접종에 적극 나섰다. 최근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발생하면서 백신 접종 지역이 늘고 있으나 한우 최대산지인 경주를 비롯한 경북이 백신 수급에서조차 경기 등지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고 한다.
경북 구제역에 대한 정부 대처도 수도권 구제역이 발생한 때와 달리 미온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백신 접종, 위기경보 수준, 구제역대책본부장 격까지 대처 방식도 달랐다. 정치권도 수도권 구제역 발생 뒤에야 특별재난지역 지정이나 구제역 관련 법률 개정 등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북은 국내 최대 한우 사육지이며 돼지 사육두수는 전국에서 세 번째다. 이번 구제역 사태를 보면서 사회 전 부문의 수도권(중앙) 권력 집중화가 재난에 대한 대응 방식에서조차 반영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씁쓸해진다. 이 같은 오해(?)나 막대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백신 접종 시기와 대응 수위 등 단계별 매뉴얼과 백서를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하겠다.
김병구 사회2부 차장 k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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