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우환 미술관 건립, 환영하는 이유

입력 2011-01-05 07:52:40

이우환(李禹煥)은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지명도가 높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화가이다. 그의 작품은 겉보기에 철판에 돌 하나 놓여 있고, 텅 빈 화면에 큰 점 하나 찍혀 있는 간소한 작품이 대부분으로 일견 맛없게 보인다. 그러나 그의 예술세계는 현대문명과 예술이 인간중심주의로 진행되는 문제점을 직시하고, 그것을 초월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줄기차게 탐구하고 제시하려는데 있다. 따라서 그의 예술은 다분히 철학적이며 반문명적인 것으로, 동양 예술의 자연성 존중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점이 주목받는 요체이다.

올해 74세인 그는 서울대를 중퇴하고 1961년에 일본에 건너가 일본대학 철학과를 졸업, 모노파(物派)라는 회화 이념을 주도하여 일본은 물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올 2월에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가진 후 미국의 각 도시에서 순회전이 계획되어 있을 정도로 국제적으로 지명도가 높다.

이우환 미술관은 일본의 나오시마(直島) 섬에 지난 여름 개관되었다. 건축가로 명성높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가 설계한 미술관이다. 일본에서 활약한 세계적인 건축가와 화가의 작품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 지난 여름 이래 지금까지 그 섬을 방문한 관광객이 무려 6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무명의 작은 섬이 일본의 금덩어리로 탈바꿈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대구 미술계를 살펴보면 정말 갑갑하다. 대구 미술은 한국 미술의 요람지로 90년이 넘는 깊은 역사 속에서 근대 미술의 태동기에는 특히 전국의 중심지였다. 한국화의 석재 서병오(徐丙五), 서양화의 이인성(李仁星), 사진의 최계복,구왕삼 등은 당시 전국에서 둘째로 손꼽히면 서러워할 최고의 작가였다. 오늘날에는 교육도시 대구에서 6개 종합대학이 배출하는 미술 인구만 해도 연간 1천300명 선을 넘을 만큼 미술 잠재 인력이 전국 최고 수준에 이른다. 그렇지만 대구 미술의 전통과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다른 도시에 문화적으로 뒤처지고 있다.

광주는 일찌감치 엄청난 규모의 미술 비엔날레가 개최되어 미술 중심 도시로 각광받고 있다. 이웃 도시 부산은 어떤가. 부산 국제영화제와 더불어 미술 비엔날레도 왕성하게 추진되고 있다. 솔직히 학생들을 인솔하여 그곳을 다녀오면 상대적인 문화 열등감에 사로잡혀 가슴이 부글거려지는 것은 굳이 미술인만의 한탄일까. 이들 도시가 자금력 하나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문화의 가치와 힘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인식하는 의식 수준에 있다.

확실한 것은 미래는 문화가 도시를 먹여 살린다는 점이다. 문화가 삶을 개선시키고 산업을 일으키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문화 낙후지역, 산업 낙후지역인 대구의 돌파구를 의외로 미술에서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풍부한 잠재 미술 인력이 있고, 유서 깊은 미술 역사의 텃밭이 있지 않은가. 현재의 일상적인 미술 활동의 지원도 필요하고 문화 선현들의 자취를 복원하는 사업도 중요하다. 그러나 낙후된 이 지역 미술 문화를 활성화시키고 미술 선진지역이 되도록 하는 미래 전략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하다. 그러한 현상을 타개하는 데에 연고를 불문하고 이우환 미술관 건립은 분명히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다. 지금 경기도 용인에 세워졌지만 원래 대구에서 건립 운동이 시작되었던 백남준 미술관도 이 지역에 있었더라면 그것과 함께 이우환 미술관이 건립되는 시점에 대구는 분명히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미술 도시로 성큼 다가설 수 있었을 것이다.

기념비적 건물의 존재는 그만큼 상징성과 파급 효과가 있다. 한촌화(閑村化) 된 대구에 세계적인 건축가의 건물과 그런 화가의 작품이 그 속에 담겨 있다는 것만 상상해도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러한 특색있는 미술관이 2, 3개 쯤 존재한다면 대구가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 한 번 상상해 보라. 그렇게 되면 과거 이 지역 작가들의 소담한 미술관도 자연스럽게 세워질 것이고 우리 모두 예술의 꽃밭에서 일상을 보낼 것이다. 제안컨대 이 참에 자연 속의 미술공원도 대구에 하나쯤 있었으면 한다.

이중희(영남미술학회 회장'계명대 미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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