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토크(9)]-듀크 엘링턴

입력 2010-12-30 14:11:25

재즈에 연미복을 입히다

재즈의 탄생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인종은 '크레올'(Creol)이다. 크레올은 유럽인 특히 스페인계와 프랑스계 자손으로 식민지 지역에서 태어 난 사람을 일컫는데 오늘날은 신대륙에서 태어난 유럽인과 흑인의 혼혈을 의미한다. 크레올은 백인 아버지를 둔 덕분에 정식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누렸다. 교회에서 부르던 가스펠 정도가 흑인들이 유럽 음악을 접할 수 있는 한계였지만 크레올은 유럽 고전음악을 접하고 교육받을 기회를 가졌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아버지가 백인이면 흑인 혼혈도 백인으로 취급하는 전통이 있는데 재즈의 발상지인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가 17세기 후반부터 프랑스령이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크레올 출신 가운데 루이 암스트롱의 스승으로 유명한 트럼펫 연주자 '킹 올리버'(King Oliver)가 있다. 킹 올리버는 뉴 올리언즈에 머물러 있던 재즈를 시카고로 전파시킨 인물이다. 킹 올리버는 자신의 이름을 단 악딴을 이끌지만 인기는 루이 암스트롱의 몫이었다. 더욱이 루이 암스트롱이 떠나면서 악단은 해체되는데 뉴욕에서 재기를 모색한다. 하지만 또 한 번 숙명적인 라이벌을 만나 2인자의 설움을 겪게 되는데 뉴욕에는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이 있었다.

'재즈를 아는 것은 듀크 엘링턴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라는 말이 있다. 루이 암스트롱이 재즈의 양식을 만들었다면 듀크 엘링턴은 2천여 곡에 달하는 재즈곡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듀크 엘링턴 이전까지 재즈는 여전히 거리의 음악이었다. 거칠고 정리되지 못한 음악은 백인 상류층들에게 외면의 대상이었고 관악기가 중심인 점도 그랬다. 하지만 듀크 엘링턴은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와 세련된 작곡, 편곡 기법을 통해 백인 상류층에게 호소할 수 있는 재즈를 완성시킨다.

듀크 엘링턴도 크레올의 피를 이어받았다. 백악관 집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고전음악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항상 세련된 옷차림과 품위 있는 생활태도를 가졌다. 덕분에 '에드워드 케네디 엘링턴'이라는 본명보다 '공작'이라는 뜻의 '듀크'로 불렸다. 듀크 엘링턴이라는 이름이 백인 사회에 알려진 것은 유명한 뉴욕의 '코튼클럽' 연주부터다. 코튼클럽은 1923년 뉴욕 할렘에서 문을 연 백인 대상의 사교클럽인데 이곳이 유명해 진 것도 듀크 엘링턴의 연주 때문이었다. 흑인 특유의 원시성을 표현한 연주와 품위 있는 편곡으로 듀크 엘링턴 악단의 연주를 '정글리듬'이라고 불렀는데 공연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 가운데는 백인 음악인도 많았다. 예술음악으로 승화된 재즈를 듣기 위해서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면 코튼클럽에서는 듀크 엘링턴의 곡이 연주된다. 지금은 누구나 입장할 수 있는 곳이지만 백인만이 입장할 수 있었던 시절. 인종차별마저 예술로 무마시켜버린 흑인 공작에게 보내는 경의일 것이다.

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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