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29일 6자회담을 언급하면서 정부의 대북 정책에 변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줄곧 대북 강경 기류를 고수해오다 대화 병행 가능성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외교통상부 새해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북한이 2012년 강성대국을 목표로 두고 있기 때문에 내년 한 해에 북한의 핵 폐기를 6자회담을 통해 반드시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청와대에서 다이빙궈(戴秉國) 중국 국무위원과 만난 자리에서 밝힌 "지금은 6자회담을 논의할 때가 아니다"라는 발언과 맞부딪친다. 이 대통령은 이튿날 대국민 담화에선 "북한이 스스로 군사적 모험주의와 핵을 포기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북핵 6자회담의 필요성 및 남북 대화를 언급한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우선 내년 초부터 주변국에서 대화 국면이 전개될 가능성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시각이다. 내년 1월 19일에는 미국과 중국의 워싱턴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고, 일본은 북측과 실무자급 대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러시아도 중국과 6자회담 수석대표 간 긴급회의에 동조하고 나섰다. 미국의 유력지 워싱턴 포스트는 28일 "이 대통령은 1월 중으로 미국으로부터 '북한과 외교적으로 대화하라'는 압박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일방적 제재만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기 힘들다는 현실적 판단도 '6자회담 재개' 발언의 배경으로 꼽힌다. 북한은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한 데 이어 3차 핵실험을 할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더군다나 악화될 대로 악화된 남북관계를 그대로 끌고가기 어렵다는 부담감도 적지않다.
하지만 이 같은 기류 변화가 실질적 국면 전환으로 이어질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당장 회담 재개를 위한 조건에 대한 입장차가 크다. 정부는 여전히 6자회담을 위해선 모든 핵 프로그램 중단,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 2005년 9·19 공동성명 등이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때문에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이 원론적 차원에서 북핵 폐기를 위한 6자회담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일 뿐 6자회담 재개의 신호탄이라고 말하기에는 섣부르다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6자회담과 관련한 이 대통령의 발언은 평소 생각을 밝힌 것"이라며 "북한이 실질적으로 핵 폐기와 관련된 변화를 보여야 한다는 부분에 있어서는 전혀 입장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김성환 외교부 장관도 "(대통령 발언이) 입장 선회가 아니라 대화와 제재를 병행하는 투트랙 기조의 연장선"이라며 "모든 것은 북한에 달려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 대통령이 29일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일부에서 말하는 흡수통일이라든가 이런 것은 논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목표는 평화통일"이라고 밝힌 것은 대북 압박이 흡수통일론으로 비화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발언으로 보인다. 또한 북한 지도부에 보내는 메시지로 보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통일부가 통일에 대한 새로운 대비를 해야 하고 국민 모두의 참여로 인해 준비가 돼야 한다"며 "통일교육에서부터 실질적인 통일에 대한 인식의 변화, 실질적 통일의 준비, 이런 여러가지 과제를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아울러 북한 주민의 삶의 질 향상 및 북한 주민 인권도 언급하며 "이 지구상에 어떠한 사람도 국민의 기본권, 최소한의 행복권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대한민국이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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