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근대미술의 향기] 김용조의 '창주 이응창 초상'

입력 2010-12-28 07:40:32

고뇌에 가득찬 눈빛의 한 젊은 지식인 초상

1930년대 초 대구에는 이인성과 비견되는 재능으로 일찍이 그에 버금가는 명성을 얻었던 또 한 명의 소년 화가가 있었다.

이인성 다음으로 선전에서 두 번씩이나 특선을 했고 마찬가지로 일본의 광풍회와 문전에까지 입선한 작가였다. 그러나 이인성보다 4살이나 아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보다 6년이나 먼저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세상을 떠남으로써 사람들은 만개하지 못한 천재를 애석해 했다.

그가 남긴 작품 가운데 지금까지 전하는 것이라고는 흑백도록에 실린 선전 출품작 사진들과 몇 점 안 되는 유화가 거의 전부다. 김용조는 특히 바다와 배와 사람들이 어울린 해경을 잘 그린 화가로 유명한데, 그 가운데 감각적인 밝은 채색과 유창한 솜씨를 여지없이 드러낸 바다 풍경들은 발군의 기량이 돋보이긴 하나 대략 소품들인데다 그나마도 수적으로 적은 것이 아쉽다.

그의 소재나 주제로 짐작하건대 그는 적어도 자신과 밀착된 세계에 충실하려고 했다기보다 주변과 다소 동떨어진 바깥 세계를 관조적인 인상파의 빛으로 옮기는 일에 경도되어 있었지 않나싶다. 다만 이 그림, 창주 이응창 초상만이 유일하게 당대의 사람과 그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 작품은 글을 쓰거나 독서 중인 인물이 화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한 채 몰입한 순간을 프로필로 포착한 초상화다. 그림 속 모델은 화가의 은사인 창주 이응창인데, 용모에서 문학적 감수성을 지닌 사색적인 한 젊은 지식인의 전형적인 모습이 보인다. 숱 많은 머리칼과 그 밑으로 드러난 밝은 이마와 둥근 안경알에서 굴절되어 모인 광선의 반사를 작가는 검은색 종이의 바탕 위에 대조적인 색조의 파스텔로 그렸는데, 마치 짙은 어둠 속에서 현상하듯 뚜렷이 부각되는 형식이 더없이 인상적이다.

속필로 그렸을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선에서 느껴지는 엄밀함과 정확성뿐만 아니라 모노톤에 가까운 색채로 안색에 부여한 명암의 조화나 짜임새 있는 구도에 이르기까지 이 연소한 작가의 천재적인 재능을 깨닫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이응창은 독립운동가 우재 이시영의 외아들로 1906년 대구에서 출생했다. 대구보통학교와 경성사범 강습과를 졸업한 그는 1926년 경주 산내초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한평생 겸허한 교육자로 지냈는데 또한 식민지 시대를 연민 가득한 동시 작가로 살면서 시작 생활에 전념했던 계몽적인 문인이었다.

김용조와의 인연은 달성초등학교에서 시작되었다. 뒤에 이인성이 있던 서동진의 대구미술사에 소개시켜 그림공부를 할 수 있게 하고 장인이었던 독립 운동가 서상일과 의논해 당시 대구 문화의 중심 역할을 하던 조양회관의 한 곳에 화실까지 마련해 성원해 준 스승이었다. 김용조 역시 그런 선생의 후의를 각별히 생각했음이, 존경과 흠모의 마음이 담긴 시선으로 묘사한 그림에서 가감 없이 드러난다.

김영동(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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