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정해진 게 없는 불확실한 미래, 차라리 司試나 딴길 갈까
지난해 3월 개원한 로스쿨이 내년부터 해마다 1천500여 명의 변호사들을 쏟아낸다. 이 수치라면 사법시험이 사라지는 2017년에는 현재의 법조계 규모와 맞먹는 1만여 명의 로스쿨 출신 법조인들이 법조계에 자리잡게 된다. 사법연수원 출신 일색이던 법조계에 로스쿨 시대가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 셈이다. 그러나 로스쿨 현장에서 느껴지는 체감온도는 기대 이상으로 낮았다. 교과과정 자체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데다 합격률 등 변호사시험법 논란까지 겹치면서 학생들이 휴학을 고려하는 등 흔들리는 모습이다. 로스쿨(law school)이 로우스쿨(low school)이 되고 있다는 우려섞인 자괴감까지 쏟아져 나오고 있다.
◆ 흔들리는 로스쿨
지역의 한 로스쿨에 다니고 있는 김모(32) 씨는 최근 자퇴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휴학을 하고 사법고시에 응시하기 위해서다. 김 씨는"로스쿨이 도입된 지 2년이 되었지만 합격률이나 시험방법, 판검사 임용방법 등 제대로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수업도 학부 수준과 차이가 없고 심도 있고 실무적이 교육을 받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같은 로스쿨에 다니고 있는 이모(40) 씨는 최근 사법고시 합격자로부터 과외를 받을까 고민하고 있다. 비법학과 출신인 이 씨는 수업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씨는"비법학 전공자라서 수업을 따라가기가 벅찬 면도 있지만 수업내용이 그만큼 알차지 못한 면도 있다"며"어차피 변호사 시험을 준비해야 하고 변호사시험과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법시험 합격생에게 과외라도 받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고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김 씨나 이 씨처럼 휴학이나 자퇴를 고민하는 글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다.
변호사시험법 논란 역시 학생들의 혼란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경북대 로스쿨 학생인 서덕수(40) 씨는"변호사 시험의 시기는 물론 과목조차 확정되지 않고 있는데다 사법시험조차 같이 치르기 때문에 로스쿨 학생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최근 로스쿨 합격률이 75%로 정해졌지만 언제 바뀔 지 모르는 상태인데다 1기생에 한해서만 정해져서 지난해 입학한 로스쿨 학생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신평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로스쿨이 도입된 지 2년이 됐지만 학교, 학생, 정부 모두 준비가 제대로 되지않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며"이 상태로 내년에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쏟아져 나올 텐데 과연 이들이 제대로 법조계에 적응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고 우려했다.
◆지역 로스쿨 자퇴생 속출
지역 로스쿨 학생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훨씬 심각하다. 실제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을 느껴 자퇴하는 학생들이 속출하고 있다. 경북대 로스쿨 1기생의 경우 120명이 입학을 했지만 2년이 지난 현재 13명이 스스로 학업을 포기했고 영남대도 3명이 자퇴 대열에 합류했다.
지난해 로스쿨을 자퇴한 김모 씨는"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로스쿨에서 들인 시간과 돈을 모조리 포기했다"고 말했다. 영남대 로스쿨의 한 2학년생은"어차피 사시출신 변호사들이나 서울 로스쿨 출신들과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기 때문에 변호사 자격증이 과거처럼 출세의 지름길로 생각지 않는다. 기업 입사나 승진 때 유리한 스펙정도로 여기는 학생들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같은 자퇴행렬은 지역 로스쿨의 공동화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많은 학생들이 서울지역 로스쿨에 재입학하거나 사법시험 준비 등의 이유로 이탈행렬에 합류하기 때문이다.
영남대 로스쿨 관계자는"아직 타 로스쿨에 비해 비교적 적은 인원이 빠져나가고 있지만 적은 정원으로 힘겹게 로스쿨을 운영하는 지방대로서는 학생들의 이탈이 가속화 될 경우 운영자체가 어려워 질 수 있다"고 했다.
김창록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지역로스쿨의 위기는 지방의 위기만큼 위기다"면서 "지방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학교와 학생들의 다양한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수들도 떠난다.
지역 로스쿨의 한 교수는 최근 변호사 개업을 고민 중이다. 로스쿨 교수직을 버리는 것이 아쉽지만 더 이상 변호사 개업을 미루다가는 교수직과 변호사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잃어버릴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그는 "실무교육을 위해 대학강단에 섰지만 솔직히 아직 교과과정의 틀이 제대로 정착되고 있지 못하다"며"교수로서의 확실한 비전을 찾지 못하면서 변호사로서의 경력에도 소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교수들이 로스쿨을 떠나려는 이유는 실무교육을 위한 시스템과 가이드 라인 마련 등 실무교육 교과과정의 틀이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실무교육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로스쿨이지만 정작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경북대 로스쿨 관계자는 "로스쿨 자체가 미국식이다. 그러나 대륙법을 따르고 있는 우리 법체계 현실상 미국의 실무교육시스템을 그대로 받아 들이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다"며"대학별로 다양한 실무교육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지만 선례가 없는데다 경험 많은 실무교육가도 없는 상태라 일선 교육현장에서 많은 시행착오가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다시 보이네 와"…참사 후 커뮤니티 도배된 글 논란
"헌법재판관, 왜 상의도 없이" 국무회의 반발에…눈시울 붉힌 최상목
전광훈, 무안공항 참사에 "하나님이 사탄에게 허락한 것" 발언
음모설·가짜뉴스, 野 '펌프질'…朴·尹 탄핵 공통·차이점은?
임영웅 "고심 끝 콘서트 진행"…김장훈·이승철·조용필, 공연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