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략) 직원 여러분, 붓이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쓰자니 수필도 아닌 것이 수필의 흉내를 내었고, 그렇다고 칼럼 같이 쓰자니 논리가 서지 않았습니다. 흉보지 마시고 한 잔의 커피로 흘려버리세요."
송종호(55)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은 자주 직원들에게 편지를 쓴다. 교감을 위해서다. 사내 인터넷망에 공개되는데 격의도 없다. 직원들과 나눈 소소한 대화를 이름까지 밝히며 전한다. "보름에 한 번 정도 쓴 것 같네요. 마음을 주고 받는데에는 편지보다 나은 수단이 없는 것 같거든요. 스스럼이 없어서 그런지 직원들도 답글을 많이 달아줍니다."
요즘 '대세'는 '까도남'(까칠하고 도도한 남자)이라지만 그와는 거리가 멀다. '소탈' '겸손'이 그를 특정짓는 이미지라는 게 그를 아는 지인들의 귀띔이다. 술은 거의 못 하지만 친화력은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그의 입신양명(立身揚名)은 집요할 정도의 노력 덕분이었다. 스스로 '일이 취미'라고 말하는 워크홀릭(workholic·일 중독)이기도 하다. 10여년 전 중소기업청 과장 시절에는 20일 넘게 사무실에서 밤을 샌 적도 있지만 요즘도 밤 11시나 돼야 퇴근, 직원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이달 21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지만 100일 동안 개인적인 식사 약속은 한 번도 잡지않았다고 했다. 1986년 제22회 기술고시에 수석 합격한 뒤 공업진흥청과 중소기업청에서만 근무하고 청와대 중소기업비서관을 지낸 '중소기업통'이지만 현장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직원 인사도 내년 6월쯤에나 실시할 계획이다. 정실을 떠나 철저히 능력 위주로 배치하기 위해선 사람을 알아야한다는 지론 때문이다. "1천일의 먹을거리를 위해 100일은 고민해야 합니다. 그 동안 전국 13개 지역본부와 11개 지부를 모두 한 번 이상 다녀왔습니다. 지방 직원들에게 '내 이름 팔면서 대출 부탁하는 사람은 모두 가짜이니까 들어주지말라'고 지시했어요."
송 이사장은 독보적인 벤처 정책 전문가로 꼽힌다. 1990년대 후반 나온 벤처 정책과 관련된 법안 대부분은 그의 손을 거쳤다. 코스닥시장의 토대를 닦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벤처 정신'이 사라진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다. "한국 휴대전화가 세계 1위에 오른 것도 알고 보면 벤처기업들의 뒷받침 덕분입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도전 정신이 너무 부족합니다. 심지어 가업을 승계하지않으려는 기업 2세들도 있더군요. 스마트폰·녹색성장산업이 성장하면서 서서히 창업 열기가 회복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내년 1월 경기도 안산에서 출범하는 '창업사관학교'를 첫 작품으로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스스로를 '코이'(こい)라고 부른다. 일본어로 잉어라는 뜻인데 임직원들에게도 '코이'가 될 것을 주문한다. "일본 출장에서 들은 얘기입니다. 잉어를 작은 수족관에 넣어두면 5~8㎝밖에 크지 않지만 더 큰 수족관에 넣으면 15~25㎝, 강에서는 120㎝까지도 성장한다더군요. 환경에 따라 성장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엄청난 DNA를 가졌으면서도 수족관의 코이처럼 길들여져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자는 것입니다."
그가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변화는 '전문업종제'(직원들의 전문화)다. 중소기업을 기계·금속·화공·전기전자·섬유·정보처리 등 6개 전문 분야로 나누고 전 직원이 자신의 전문분야를 선택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지금까지는 직원들이 업종에 관계없이 심사·평가, 컨설팅 업무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관심을 갖고 한 분야만 다룬다면 저절로 전문성이 갖춰지지않겠습니까? 개인이 발전하면 조직은 덩달아 위상이 높아집니다."
달성군 옥포에서 태어난 그는 고향 후배들에게 유구필응(有求必應)이란 말을 꼭 해주고 싶다고 했다. 원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노력하면 안 될 게 없다는 그의 신념이기도 하다. "지방대 출신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학벌, 연줄은 부차적인 요소일 뿐입니다.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보답이 있습니다."
달성군 옥포면 교항리에서 태어난 그는 금계초교, 계성중, 계성고, 영남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 가장 하고 싶은 일은 고향 초교의 교장선생님이라 했다. "시골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다"는 이유가 역시 그다웠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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