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장두노미

입력 2010-12-20 11:23:27

연말이면 대개의 사람들이 세상 살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고들 한다. 살아가면서 기쁜 일보다는 근심과 고민거리가 늘어나는 모양이다. 그래서 어려웠던 한 해를 잊어버리자며 망년 모임을 하는지도 모른다. 한 해를 돌아보며 회한에 젖는 일은 아마도 동서고금이 마찬가지일 터다. 지나간 길은 언제나 아쉬움을 남기는 법이며 연말이란 시간은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든다.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장두노미(藏頭露尾)를 선정했다. 쫓기는 타조가 머리는 덤불 속에 숨겼지만 꼬리는 미처 감추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이 말을 선정한 교수들은 올 한 해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정부가 국민을 설득하고 의혹을 깨끗이 해소하려는 노력보다 진실을 감추려는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먼저 추천한 교수는 진실은 영원히 덮어둘 수 없다고 덧붙였다. 설과 의혹이 무성했던 올해의 세태를 반영했다.

지난 2001년부터 시작한 교수신문의 연말 사자성어는 죄다 우울하다. 2001년 오리무중(五里霧中)을 시작으로 이합집산(離合集散) 우왕좌왕 (右往左往) 당동벌이(黨同伐異) 상화하택(上火下澤) 밀운불우(密雲不雨) 자기기인(自欺欺人) 호질기의(護疾忌醫) 방기곡경(旁岐曲逕)까지 죄다 정도를 벗어난 사회현상을 꼬집고 있다. 명확한 정책은 사라지고 이익만 좇아가는 세태를 지적하기도 했고 화합하지 못하고 상극의 다툼을 벌이는 사회상을 비판하기도 했다.

교수신문의 역대 사자성어는 불신과 불화 속에 순리보다 억지가 만연한 사회를 지적했다. 폭발할 듯 쌓여지는 답답함이나 서로 속고 속이면서 스스로의 잘못은 고치지 않으려는 고집과 독선을 꼬집기도 했다. 좋은 말을 놔두고 답답하고 우울한 말을 선정한 것은 아마 한 해를 반성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올해의 사자성어가 지적한 사회 불신에는 인터넷의 역기능이 작용한 바도 적잖다. 소통과 자유를 사람들에게 선사한 인터넷이 거짓과 흑색 정보도 난무하게 만들어 사실보다는 의혹과 설이 무성한 한 해가 된 점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다. 사람들이 절기를 나눠 삶에 이용할 뿐이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공간은 시간의 흐름 속에 나날이 변화한다. 변하지 않는 시간의 열차 속에서 새로운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가느냐는 사람의 몫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보람과 희망의 사자성어는 언제쯤 나올까.

서영관 논설실장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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