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두통 달래려 산 찾다가 약초와 인연"
"자연산 도라지가 좋아 산을 누빈 지 30년이 흘렀고 300년 묵은 도라지도 캐봤어요. 이만하면 도라지 인생이라 해도 괜찮겠지요."
일명 '도라지 박사'로 통하는 황치구(57·대구 북구) 씨. 그의 아파트 거실에는 도라지로 담근 술이 담긴 술병으로 꽉 차 있다. 도라지 진액이 우러나 노랗게 농익은 온갖 술은 보기만 해도 취기가 오르는 것 같다. 300년산, 200년산 도라지술 등 400여 병에 이르고 양으로 치면 대략 400말이 넘는다.
황 씨는 기자가 앉자마자 도라지 술병과 안주를 차려왔다. 건네주는 술을 한 모금 삼키자 진한 도라지 향이 확 퍼졌고 전신에 짜릿한 반응이 왔다.
그는 5년 전 경북 의성군 빙계계곡 주변 해발 600m 고지의 절벽 바위 틈에서 300년이 넘은 산도라지를 캤다고 자랑했다. 도라지 길이만 1.2m, 몸통 위 뇌두 길이가 20㎝나 됐다고 했다. 그는 또 최근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천태산 바위절벽에서 150년산 도라지 2뿌리를 캐기도 했다.
"오래된 산도라지는 대부분 바위절벽에서 자라요. 절벽 중간에 흙이 흘러내려 쌓인 부분에 도라지 씨앗이 떨어져 자라게 되죠. 바위절벽에서는 뿌리가 절벽을 따라 아래로 길게 자랄 수 있고 물 빠짐도 좋아 도라지가 몇백 년간 생육이 가능합니다."
오래 묵은 산도라지는 집도라지에서는 볼 수 없는 뇌두 부분이 있다고 했다. 뇌두의 길이에 따라 몇 년 산인지를 구분할 수 있다. 또 산도라지는 처음에는 껍질이 하얗지만 해가 지날수록 검은색으로 변해 흑도라지가 된다고 했다. 뇌두 위에 싹트는 순도 여러 개 나오는 게 특징. 황 씨는 2003년 단양 우담봉에서 캔 250년산 도라지는 몸통 하나에 뇌두가 5개, 순이 17개나 달려있었다고 했다.
"한때 거창 안의면에서는 절벽 한곳에서 50뿌리가 넘는 도라지를 캤어요. 3대가 동시에 자리한 집안도라지였어요. 아마 할아버지 도라지는 200년이 넘었을 거예요. 제 인생에 그런 횡재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는 주로 늦가을에 도라지를 캔다. 순이 말라죽어 약효가 가장 좋기 때문이다. 그는 봄·여름에도 산을 누빈다. 미리 순이 올라오거나 꽃이 핀 도라지의 위치를 파악해두기 위해서다. 하나하나 도라지 사진을 찍고 도라지 위치 지도도 그린다. 이후 늦가을이 되면 본격적으로 도라지 캐기에 나선다. 그는 도라지 한 뿌리를 캐는 데 4시간이 걸리기도 한다고 했다. 바위절벽에서 뿌리가 끊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도라지를 캐서 다시 뿌리에 묻은 흙을 솔빗으로 뿌리 하나하나까지 털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주로 절벽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가 도라지를 캡니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요. 무엇보다 마음을 다잡고 욕심을 버리는 게 중요하죠."
그는 올봄 팔공산에서 도라지를 캐다 굴러떨어져 어깨를 다치기도 했다고 한다.
안동 와룡면이 고향인 그는 야간 중학교에 다닐 때 약국 일을 7년간 했다. 당시 약국에서 화공약품을 많이 취급했는데 편두통이 심해졌고 머리카락도 빠져 온갖 고생을 했다. 마음을 달래기 위해 산을 찾았고 그럴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져 자주 산에 가게 됐다는 것. 약초를 캐기 시작한 것은 25세부터다. 30대에는 약초에 미쳐 4, 5일씩 산에 텐트를 치고 약초를 캔 적도 많다고 했다.
"저의 어머님도 병환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어머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산에 나는 온갖 약초를 캐 달여드렸어요. 지금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제가 캐준 약초로 아마 15년 이상은 더 사셨는지도 몰라요."
그는 마음만은 어느 누구 못지않은 부자라고 했다. 자신이 정성껏 담근 도라지 술을 주위 사람과 나눠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술병이 600개 정도 모이면 도라지술 전시회를 열어보고 싶다고 했다.
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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