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미스 "모든 것 다 갖췄다, 그러나 옆구리는 시리다"

입력 2010-11-20 07:30:49

'아! 옛날이여~'가 가장 그리운 사람들은? 바로 '골드미스'들이다.

30대 미혼 여성을 일컫는 일명 '골드미스'는 한때 커리어우먼의 대명사로 같은 20, 40대 여성은 물론 남성들에게도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다룬 골드미스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끌 정도였다. 골드미스는 여전히 여성은 물론 남성들에게 부러움을 받고 있을까? 2010년 11월 지금, 골드미스들은 스스로 "예전 같지 않다"고 자조한다.

겉으로 보이는 골드미스는 화려한 금빛이다. 실력과 성실함으로 남보다 빨리 승진하거나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꿀릴 것 없이 아예 독립해 자기 사업을 하는 등 무엇 하나 부족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결혼시장에서는 주가 폭락이다. 이들이 배우자로 지목하고 있는 능력 있고 경제력 있는 '골드미스터'들은 골드미스들에게 눈길을 주기가 부담스럽다. 결혼시장 냉대도 서러운데 저출산 문제의 주인공 타이틀까지 갖게 됐다. '사회적 책임을 저버리는 이기적인 사람'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골드미스, '서러워요'

지역의 한 중소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김진형(35) 씨. 대학 졸업 후 곧장 일을 시작해서 벌써 부장이 됐다. 김 씨가 받는 연봉은 5천만원 정도.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부모님 차도 바꿔 드렸고, 지난해 말부터는 중국어학원을 다니며 자기계발에 힘을 쏟고 있다. 결혼은 늦어져도 본인 삶에 만족했던 김 씨였지만 "요즘엔 자꾸 눈물이 난다"고 했다. 무엇하나 빠질 것 없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번번이 맞선 상대에게 퇴자를 맞기 때문이다.

대구 북구 칠곡에서 유치원을 경영하고 있는 이정미(38) 씨도 차가운 바람이 부는 이맘때면 괜히 우울하다. 올해만 해도 주변 지인들을 통해 10회 정도 맞선을 보았지만 눈이 너무 높다는 주변의 타박만 받을 뿐 마음에 드는 이상형의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 이 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만나긴 만났는데 계속 만날 수가 없었다.

연인이 있는 골드미스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결혼은 물론 연애 과정에서도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소아과 의사인 김정임(40) 씨는 얼마 전 결혼정보회사의 소개로 3살 연하남을 소개받았다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만남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남친'에 비해 너무 늙어보인다는 말이 싫어 먹고 싶은 것을 줄여 운동을 하면서까지 몸매 관리에 올인했다. 또 나이 많은 죄(?) 때문에 데이트 비용도 전적으로 김 씨의 몫이었다. 돈 쓰는 것과 몸매 관리하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어차피 좋아서 쓰는 것이고 관리하면 건강에 좋다'고 연애기간 내내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다. 그러나 정작 김 씨가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연하남을 위해서 많은 것을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연애의 주도권은 항상 남친에 맞춰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오늘은 저거 먹자, 이 영화 보자는 등 데이트 내내 남친의 기호에 맞춰야 하는 현실에서 왠지 모를 서글픔을 느꼈어요."

◆골드미스 '골드러시'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독신가구 수는 전체 가구의 5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30대 여성 미혼율의 경우 2000년 이후 5년 만에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국세청의 종합소득세 신고자 조사에서도 고소득 여성의 납세 비율은 2008년 전체 여성의 40%를 넘어섰다. 결혼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골드미스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각종 지표다.

골드미스가 많아지면서 결혼정보업체에 골드미스 가입률이 매년 큰폭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결혼보다는 여가나 자기계발 등에만 관심이 있을 것 같지만 정작 골드미스들의 최대 관심사는 결혼이라는 방증이다.

결혼정보업체인 듀오 대구지사에 따르면 2007년 24%에 불과했던 30대 여성 회원 가입률이 올해 41%까지 급증했다. 같은 기간 남성 회원의 경우 30%에서 35%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박장윤 듀오 대구지사장은 "늦어지는 결혼은 국가적으로도 출산율 저하 등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지만 개인적으로도 출산, 육아나 경제적 관점에서 유익하지 않다"며 "개인적인 성취나 싱글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것도 좋지만 공부든 결혼이든 다 적당한 때가 있으니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하고 정책적으로도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저출산의 원흉(?)

자의 반 타의 반 결혼을 못하고 있는 골드미스들은 어느새 사회로부터 눈총을 받는 대상이 돼 버렸다. 그렇다면 과연 골드미스가 저출산에 일조(?)하고 있는 것일까. 오창근 대구대 교수는 "흔히 저출산의 원인으로 기혼 여성들의 낮은 출산율이 지적되고 있지만 실제로 최근 들어선 여성의 미혼 현상이 더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통계청 통계개발원에 따르면 15세 이상 모든 기혼 여성의 평균 출생자녀 수는 2000년 2.54명, 2005년 2.43명으로 0.11명 줄었다. 이 기간 미혼 여성까지 포함한 15세 이상 전체 여성의 평균 출생자녀 수는 1.90명에서 1.81명으로 0.09명 줄어드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이를 젊은 세대, 즉 주로 출산을 하는 25~34세 연령대 여성으로 국한하면 기혼 여성의 평균 출생자녀 수 감소 폭은 0.13명(1.47→1.33명)인 데 비해 여성 전체의 출생자녀 수 감소 폭은 0.26명(1.10→0.83명)으로 2배에 달했다. 골드미스가 저출산에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한 셈이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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