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미네랄워터 아끼며 마신다
제주도에는 강이 없다. 하천도 빗물이 2, 3시간이면 바다로 빠져나가 마른 상태의 '건천' 특성이 있다. 이 때문에 예로부터 제주 사람들은 지하수를 '생명수'로 여겼다. 수자원은 100% 지하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지질 구조를 가진 것이다. 제주도는 지금도 먹는 물을 비롯한 생활용수나 농작물 재배 등을 위한 농업용수를 지하수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주도는 지하수 정책에 일찌감치 눈을 돌렸다. 1991년 제주도는 신고제였던 지하수 개발을 허가제로 바꾸는 지하수개발특별법을 제정했다. 또 2006년엔 지하수에 '공수'(公水) 개념을 도입해 엄격한 관리를 하고 있다. 국내 지자체 중에서는 유일하다. 지하수 사용에 따른 부담금을 개인에게 철저하게 물리는 유일한 동네다.
하지만 요즘 제주도는 관광객의 급증으로 인해 골프장, 호텔 등이 난립하면서 지하수 사용에 위기가 오고 있다. 물 수요 급증과 맞물려 무분별한 지하수 개발 및 고갈 문제까지 제기되면서 지하수 적정 개발을 비롯한 체계적인 수자원 관리 시스템이 시급한 현안 과제로 대두한 것이다.
◆지하수가 생명수
제주도에 가면 '물허벅'이란 말을 들을 수 있다. 제주도의 토양은 화산 활동으로 생긴 현무암이 풍화돼 퇴적된 경우여서 빗물이 빠르게 땅속으로 스며든다. 땅속에 물이 많이 모이면 해안가 일부 저지대에서 용출수로 솟아오르는데 이곳 여인네들은 수십 리 떨어진 먼 곳까지 가서 이 물을 길어야 했다. 이때 쓰인 물항아리가 '물허벅'이다. 주둥이가 좁은 물항아리를 통해 한 방울의 물도 흘리지 않도록 애를 쓴 것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외지인에게 이 모습을 보여주며 제주도의 '조냥정신'(절약정신)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이런 옛 조상의 물 절약 정신이 지금은 많이 퇴색된 느낌이다. 지하수가 개발되면서부터다. 제주도 사람들의 물에 대한 목마름은 1961년 해갈되기 시작했다. 북제주군 애월읍 수산리의 첫 지하수 관정이 개발된 것이다. 1969년엔 이곳에서 '제1의 물의 혁명'으로 불리는 어승생 수원지 개발이 이뤄지면서 제주도 사람들의 갈증은 해갈되기 시작했으며 1970년 당시 농업진흥공사(현 농업기반공사)가 한림읍 동명리에서 자체 지하수 개발에 성공하면서 본격적인 지하수 개발 시대의 서막을 알렸다.
◆무분별한 개발
이후 제주도는 물부족 동네가 아닌 물이 넘쳐나는 동네로 바뀌었다. 제주KAL호텔을 시작으로 1980년대 들어 사설 관정까지 등장하면서 제주도의 지하수는 음용수와 생활·농업용수로 아낌없이 퍼내졌다.
제주발전연구원이 지난해 펴낸 '제주지역 용수 수요 전망과 수자원 보전·관리 계획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2008년 말 현재 개발된 지하수 관정은 4천971개. 이 중 농업용 관정은 3천314개로 전체의 66.6%를 차지하고 있으며 생활용 관정은 1천361개로 전체의 27.4%다.
이 연구보고서는 제주도 지하수의 적정개발량에 비해 허가량이 너무 많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제주도의 지하수 적정개발량은 하루 176만8천㎥인데 허가량은 140만5천㎥로 이미 80%에 육박하고 있다.
특히 애월, 한경, 대정 유역의 지하수 허가량은 각각 223.6%, 212%, 184.2% 등 적정개발량을 크게 넘어선 지역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제주도는 적정개발량을 초과한 6개 수역을 특별관리구역으로 정해 추가 개발을 제한하고 있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제주환경운동연합 이영웅 사무국장은 "지하수를 광범위하게 개발하면서 한계 수위에 접근하고 있어 문제이며, 특히 공공 관정보다 사설 관정 비중이 2, 3배가량 많아 지하수 관리에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제주도와 비슷한 여건인 하와이주 오아후섬은 인구는 제주도에 비해 40만 명 정도 많지만 지하수 관정은 제주의 절반 이하인 2천 개에 불과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하수 고갈 주범은 골프장, 호텔
제주도 내에서 지하수를 가장 많이 쓰는 곳은 먹는 샘물 제조공장인 삼다수다. 연간 50만5천㎥를 사용하고 있다. 이곳 관계자들은 제주도로부터 하루 평균 2천100㎥의 허가량을 받았지만 실제 사용은 하루 평균 1천340㎥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이 허가량도 2007년 전까지는 868㎥에 불과했다. 귀중한 수자원인 지하수를 남용하지 말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제 논리에 따라 유한할 수밖에 없는 귀중한 지하수를 육지 사람이 마시는 현실은 일종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관광 제주를 기치로 우후죽순 늘고 있는 골프장과 호텔들이 지하수 고갈의 주범으로 낙인 찍히고 있다. 제주발전연구원이 지난해 조사한 '지하수 다량 사용 업체 현황'을 살펴보면 15위권 내에 골프장이 10개나 차지했다. 현재 제주도 내에는 20여 곳의 골프장이 운영 중인데 현재 건설 중이거나 사업 구상중인 골프장까지 합하면 40곳이나 된다. 제주환경운동연합 김동주 팀장은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골프장과 호텔이 마구 지하수공을 뚫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지하수 남용은 물론 오·폐수와 농약 등의 유입으로 오염 문제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염이 큰일
제주도 지하수 전문가들은 "육지와 비교해 섬 지역인 제주도는 지하수 고갈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하수 함양량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것. 현무암 덩어리인 제주의 특성상 비가 오면 절반가량의 빗물이 그대로 땅속으로 스며든다. 지하수 함양량이 46%에 이른다. 보통 20% 안팎인 육지의 함양량보다 두 배 이상 많다. 게다가 제주는 연 강수량이 1천100~2천㎜로 많은 편에 속하는 지역이다.
제주특별자치도 환경자원연구원 강봉래 박사는 "지하수 허가량은 매우 높은 적정개발량의 80% 수준이며 현재 개발된 지하수 시설용량은 90%에 육박하지만 실제 사용량은 26%에 머물고 있어 지하수 고갈은 문제가 안 된다"며 "특히 제주도는 지형 특성상 비가 오면 높은 함양량으로 지하수가 다시 차는 데다 10년 전부터 지하수위 모니터링을 철저하게 하고 있어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제주의 지하수 오염문제가 가장 문제라고 꼽았다. 지하수 함양량과 함양률이 높다는 것은 반대로 오염량과 오염률도 동시에 높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제주생태교육연구소 현원학 소장은 "한라산에서 함양된 지하수가 해안 저지대의 마을까지 이동해오면서 많은 오염원으로부터 위험에 노출돼 있다. 특히 화학비료와 축산분뇨 등은 질산성 질소의 농도를 증가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라며, "또 전체 지하수 관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설 관정과 폐공의 관리가 허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도 오염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현 박사는 또 대규모 용천 지역으로 소문난 대정읍 서림수원지가 최근 폐쇄된 점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대정읍 마을 사람들의 식수용으로 사용하던 서림수원지가 1, 2년 새 폐쇄됐어요. 질산성 질소 농도가 먹는 물 허용치를 넘게 되면서 더는 마실 수 없는 물이 된 거지요. 원인은 골프장, 호텔, 축산시설 등에서 마구 버려지는 농약과 분뇨 때문입니다." 그는 "제주도 지하수는 고갈의 문제보다 오염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지하수 관련 정보공개 및 대국민 브리핑제도가 연례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염지하수 관리도 절실
제주도의 하루 평균 지하수 사용량은 43만7천369㎥로 지하수 적정 개발량 대비 최대 64%, 평균 25% 수준으로 분석됐다. 용도별로는 생활용수가 하루평균 19만4천㎥(전체 이용량의 44%), 농업용수가 하루평균 23만㎥(53%)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공업 및 기타 용수는 하루 평균 1만3천㎥ 사용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염지하수(鹽地下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제주도 동쪽 지역에는 염지하수 관정이 1천127개가 뚫려있고 양식장에서 대부분 이 물을 끌어올려 사용하고 있다. 염지하수는 지하에 있는 바닷물을 뜻한다. 바닷물이기 때문에 지하수 사용량 측정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게 제주특별자치도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난해 제주발전연구원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하루 평균 817만1천㎥의 염지하수가 사용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1년으로 환산하면 29억8천㎥의 염지하수가 사용되는 것으로 계산된다. 단순 계산한 것치고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대구의 연간 지하수 사용량이 3천만㎥라는 것을 대입해보면 더 그렇다.
최근 제주특별자치도는 이 염지하수를 먹는샘물로 개발한다는 구상을 갖고 '용암 해수 사업'에 나서고 있다. 안 그래도 많이 쓰는 염지하수가 앞으로는 더 쓰일 형편에 놓였다.
이에 대해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성익환 박사는 "바닷물이라고 마구 써도 괜찮다는 발상이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많은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며 "제주 인근 바다 지하에 있는 염지하수를 마구 끌어낼 경우 오히려 제주도 땅속의 지하수위가 현격하게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글·사진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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