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랑 산사람] 제천 월악산

입력 2010-11-04 14:09:03

장엄한 기상에 '영봉'을 허하노라

춘천 삼악산, 담양 추월산, 제천 월악산의 공통점은? 바로 아름다운 호수(소양호, 담양호, 충주호)를 끼고 있다는 점이다. 산, 물 모두 생기(生氣)의 근원으로 아름다운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산과 물의 결합은 풍수학적으로 배산임수(背山臨水)를 충족시키고 역사적으로 인류 문명의 터전을 제공했다. 삼국시대 쟁패의 핵심요충지는 호남의 곡창지대도, 해상권도 아닌 중원(中原'제천, 충주, 문경, 단양)이었다. 이 중부지역의 한 복판에서 높이 솟아 수천 년 역사를 내려다 본 산이 있으니 바로 제천 월악산이다.

◆ 천혜의 지형…주변 국가 각축장

월악산은 남한강의 호위를 받고 남북으로 험준한 백두대간을 끼고 있다. 강과 산맥의 요충, 이런 천혜의 지형 때문에 고대부터 주변 국가들의 각축장이었다. 중원 지역은 제천 점말동굴, 청원 두로봉 동굴유적에서 보듯 이미 구석기 때부터 고대문명의 둥지를 틀었던 곳이다.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의 모든 패권 다툼은 한강수계에서 이루어졌으며 그 중심에 중원이 있었다. 후백제의 견훤은 이곳에 궁궐을 지으려다 무산됐고 몽골 침입 때 월악산 일대는 치열한 격전지였다. 동학농민전쟁 때 관군에 패퇴한 서장옥(전봉준의 스승)이 숨어든 곳도 월악산이고 광복 후 빨치산 마지막 잔당들이 최후를 마친 곳도 이곳이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산 주변엔 많은 역사적 상흔과 전설이 서려 있다.

월악산은 충북과 경북도의 4개 시군에 걸쳐있다. 총면적 284㎢에 1,094m의 영봉을 비롯 150여 개의 기암단애가 비경을 이루고 있다. 매스컴들이 가을단풍 소식으로 연일 떠들썩하다. 일행은 충북 제천으로 향했다. 들머리인 수산리로 가는 길, 길가엔 가을을 흠뻑 머금은 충주호가 아침 안개 속에서 하얀 물빛으로 일렁인다. 수산리에서 보덕암에 이르는 3km는 농로와 임도를 거닐며 한가로이 농촌마을을 걷는 코스. 밭엔 수확을 앞둔 깨, 콩, 율무가 마지막 내실을 키우고 길가 감나무는 노랗게 가을을 물들이고 있다.

◆ 고즈넉한 가을 풍경 담은 충주호

보덕암에서 영봉에 이르는 10리 길로 들어선다. 들머리부터 시작되는 급경사 길은 호흡을 압박하고 2천 개가 넘는다는 계단은 무릎을 녹초로 만든다. '악(岳)'자 돌림 5형제의 맏형이니 오죽할까. 웬만큼 산을 탄다는 산꾼들도 중간 중간에 단풍을 핑계 삼아 숨을 돌린다. 2시간쯤 걸어 신륵사 삼거리에 이른다. 하늘에 높게 걸린 우람한 암봉이 일행의 시선을 잡아끈다. 정상인 영봉(靈峰)이다. 봉우리 높이만 150m. 하늘을 찌를 듯 기운차게 솟아있는 봉우리는 '한국의 마테호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영봉은 사방에서 보이는 모습이 각각 달라 '네 개의 얼굴을 가진 봉우리'로 불린다. 북서쪽에서 보면 쫑긋한 토끼 귀의 형상이, 동쪽에서는 쇠뿔 모습이, 남쪽에서 보면 거대한 히말라야 만년설로 나타난다고 한다.

마지막 급경사를 올라 영봉에 우뚝 선다. 제일 먼저 조령산, 포암산, 금수산 같은 중부권 명산들이 사방에서 봉우리를 드러낸다. 고개를 돌려 시선을 서쪽으로 향한다. 충주호의 고즈넉한 풍경이 시야를 간지른다. 하봉의 노송과 중봉의 단풍을 수면에 담고 평화롭게 물결을 일렁인다. 단풍의 화려한 색감과 호수의 푸른 물이 어울려 한 폭 풍경화를 그려냈다.

정상으로 향하는 철계단엔 사진을 찍기 위한 등산객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요즘 들어 정상석 수를 헤아리며 인증 샷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앨범을 몇 권씩 채운 사람이 적지 않으니 그 분들에게 정상 인증은 필수 의례일 것이다.

◆히말라야 마테호른 위용 갖춘 영봉

밀려드는 인파를 피해 하산 길에 나선다. 신륵사 삼거리에서 덕주사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하산 길에서 비로소 영봉의 실체가 어림된다. 30여 분을 정신없이 걸었는데도 아직도 암봉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으니 그 규모가 짐작된다. 암봉 주위가 10리 길이라는 기록도 본적이 있는데 결코 과장된 자료가 아닌 것 같다. 영봉을 뚜렷하게 볼 수 있는 곳은 1시간쯤 거리에 있는 960봉. 잔가지나 능선의 방해를 받지 않고 가장 또렷이 봉우리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하늘을 향해 솟구친 기암들이 알프스의 고봉을 연상하게 한다. 이런 장엄한 기상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단 두 곳만 허락했다는 '영봉'(靈峰) 호칭을 받았다.

이제 급경사 길이 끝나고 순탄한 능선 길이 이어진다. 하얀 암릉에 노송들이 조화를 이룬 만수봉 암릉이 서사면(西斜面)으로 길게 뻗어 있다. 하얀 암벽 틈에서 조령산에서 방사했다는 산양의 흔적을 더듬는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 백두대간의 생태 축을 따라 산양 떼들이 드나드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덕주골 입구에서 마애불로 접어든다. 이 불상에는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와 누이 덕주공주의 사연이 전한다. 마의태자 일행이 금강산으로 가기위해 하늘재에 들어섰을 때 고려의 호족들이 그들을 막아섰다. 신라재건운동을 벌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결국 마의태자는 미륵사에, 덕주공주는 덕주사에 유폐당하고 만다. 이때 공주는 마애불을 세워 망국의 설움을 달랬다.

태자와 공주 일행은 왜 월악산을 택했을까. 아마도 중원이라는 전략적 가치, 역사적 상징성과 월악산이라는 천혜의 요새에 주목했을 것이다. 그들은 유민들을 규합해 세력을 키워 신라부흥의 큰 뜻을 도모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가정을 증명이라도 하듯 덕주사 바로 앞엔 마의태자가 쌓았다는 성터가 남아있다. 집으로 향하는 길, 차창 밖에선 성벽 그림자가 길게 뻗어 있다. 성터 위에 곱게 내려앉은 단풍에서 태자와 공주의 망국한이 겹쳐진다.

◆교통

중앙고속도로~단양IC~충주 방면(36번 국도)~월악산(송계나 수산). 중부내륙고속도로~충주IC~단양 방면 우회전~36번 국도~수안보 방면~월악산(송계, 수산).

◆맛집

- 송계휴게소 043)651-1086,

- 여주박상궁맛집(한식) 043)651-1949,

- 산마을가든(민물매운탕) 043)653-4711,

- 토박이식당(한식) 043)651-5207

◆숙박

- 송계계곡 월악유스호스텔 043)651-7001,

- 솔바람펜션 043)845-1775,

- 학산원펜션 043)651-1034.

글'사진 한상갑기자 arira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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