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대통령과 '親독서' 행보

입력 2010-10-26 07:11:15

지난해 이맘때쯤의 일이다. 식사 자리에서 처음 만난 대구경북지역 출신 한 인사는 건네받은 명함을 보더니 다자꼬짜 "보수꼴통답네"라고 했다. 아직도 '010' 휴대전화 번호를 쓰지 않는 데 대한 농담이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나온 야당 의원들의 TK 비하 발언처럼 가슴에 대못이 박히진 않았지만 트렌드에 뒤처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올해 들어 스마트폰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보수꼴통다움'을 유지하고 있다. 출퇴근 지하철 안에선 '트위터' 대신 신문을 읽거나 책을 본다. 가끔씩은 활자의 바다에 빠져 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치기도 하고, 뭔가 읽는 이를 보면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네고 싶을 때도 있다. 어느 도서평론가의 책이름처럼 활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호모 부커스'라 한다면 지금은 '호모 부커스'의 실종 시대다.

사실 걸어다니면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서핑을 하고, PMP로 드라마를 보고, PSP로 게임을 할 수 있는 세상에서 활자는 재미없다. 딱딱하고 피곤하다. 귀찮고 지루하다. 한마디로 흡인력이 없다. 전자책(e북)의 등장이 독서 대중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예측 역시 아쉽게도 빗나간 듯하다.

각종 독서 관련 통계조사 결과도 암울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 초 발표한 '2009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 성인 10명 가운데 3명은 1년 동안 1권의 책도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의 연간 독서량은 2007년 12.1권에서 2008년 11.9권, 2009년 10.9권으로 줄었다. 반면 여가 활용에서 독서의 비중은 성인의 경우 7위, 고등학생은 8위로 나타났다.

또 최근 한 취업포털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들은 한 달 평균 3만2천원을 들여 2.6권의 책을 읽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술자리에 쓴 비용은 평균 12만6천원이었다. 매월 독서에 쓰는 비용이 술값의 4분의 1 수준인 셈이었다. 독서를 자주 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라는 응답이 58.0%로 가장 많았다.

며칠 전에는 책 읽기를 둘러싼 모 대학 학생회장의 단식투쟁이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학과별 필독서와 추천도서 등을 읽고 독후감을 내지 않으면 장학금 신청'해외 연수프로그램 참가 등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학교 측의 방침이 강제성이 있다는 논란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흔히 한다. 실제로 인생이 책 한 권으로 바뀐 사례도 직접 봤다. 본지에 소개하기도 했지만 중소기업인으로서 성공을 거둔 한 출향인사는 대학 졸업 후 취직을 못해 고민하던 중 지인으로부터 우연히 새로운 산업용품에 대한 영어 원서 한 권을 전해 받고 '블루 오션'을 개척, 수백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성공신화를 쓰고 있다.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파워 리더'(Power reader) 가운데 한 명임에 분명하다. 대통령이 읽었다는 '정의란 무엇인가'와 '넛지' 등은 뉴스에 소개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미지 정치의 일환이라 할지라도 대통령의 직위가 갖는 영향력만큼 일반인들의 관심은 높을 수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성공신화를 이룬 CEO 출신답게 30여 분 만에 책 한 권을 뚝딱 해치우는 속독 스타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참석을 위해 이달 초 벨기에 브뤼셀을 다녀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책 두 권을 읽었다고 한다. 전통시장을 찾아 서민들의 애환을 듣고 길거리음식과 함께하는 걸 좋아하는 이 대통령이 이 가을, 서점에 들러 책읽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까.

이상헌정치부 차장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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