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후퇴때 "사흘뒤 오겠다" 약속하고 南내려와
"1·4후퇴 때 부모님을 모시고 내려오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지요. 막내 여동생을 만나면 언제쯤 부모님이 돌아가셨는지, 선산은 어딘지 가슴속 답답함부터 풀어야겠습니다."
내달 3~5일 이산가족 방문단 명단에 포함돼 북한에 사는 막내 여동생을 만나게 된 김기준(86·청도읍 평양1리) 씨는 텃밭의 감을 따러 나가며 기쁨과 회한이 겹치는 표정을 지었다. 김 씨는 "진작에 부모님을 뵈었어야 하는데 너무 늦었지. 너무 불효를 했어. 가족들이 모두 모였으면 하는 소망을 품고 있었지만 세월이 너무 흘러버려 안타깝다"며 말끝을 흐렸다.
1·4후퇴 때 황해북도 개풍군(당시 경기도 개성으로 기억)의 집을 떠나며 한 사흘 안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한 약속이 되고 말았다. 김 씨는 "당시 부모님과 여동생 2명을 남겨두고 초등학생이던 남동생만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왔는데 부모님을 영영 만날 수 없게 됐다"며 애써 아픔을 달랬다. 대한적십자사로부터 최종 연락을 받고 곧 막내 여동생을 만나게 되었으니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나타냈다.
김 씨는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던 초기부터 신청을 거듭했으나 인제야 부모님과 고향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며 "16살 차이가 나는 막내 여동생의 옛날 모습을 생각하면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음을 지었다.
김 씨는 전쟁이 끝난 후 직업군인으로 복무하다 차량사고 후유증으로 제대한 뒤 강원도 춘천에서 쌀과 연탄, 생필품을 파는 작은 가게를 운영했으며 2남 1녀의 자녀를 분가시킨 후 지난 1990년쯤 청도로 이주해 정착했다. 부인 최선필(77) 씨는 "남편이 친지가 없어 명절 때면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계속 눈물을 흘려 나도 같이 울었다"며 "부모님과 여동생을 책임지지 못했다는 그 속마음이 오죽했겠느냐"고 말했다.
청도·노진규기자 jgro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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