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방송 꺼." 좌중이 산만해지면 하는 소리다. 나는 이 말이 싫다. 박영석 대구문화방송 사장이나 이노수 대구방송 사장은 아마 나보다 더 짜증이 날 것이다. 농담이 아니다. 이런 표현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있다.
첫째, 지방방송의 어려움이 실제 커지고 있다. 민영 미디어 랩 도입, 종합편성채널 등장 등 미디어 환경 변화가 지방방송에 미칠 영향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다. 이 분야 경영자들은 하루하루 마음을 졸이고 있을 것이다. 걱정이다. 지방방송이 약해지면 지방의 목소리를 어떻게 모을 것이며 지방의 가치는 누가 들어 올릴 것인가? 이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종사자들의 밥그릇 문제가 아니라 지방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삶에 직결되어 있는 문제다.
나는 남부정류장 네거리를 지나서 시지를 거쳐 학교로 출근한다. 담티고개를 넘으면 가을빛이 눈에 들어온다. 감나무 잎 색깔도 나날이 다르다. 라디오를 켠다. 그런데 거기서 흘러나오는 코맹맹이 리포터의 소리가 가을아침의 정취를 망친다. "한남대교 남단이 막히니 동작대교로 돌아가세요." 내가 이런 얘기를 왜 들어야 하나? 라디오를 내동댕이치고 싶다. 나에게 필요한 정보는 경산 입구가 복잡한가이다.
둘째, '지방방송 끄라'는 말에는 '지방'을 폄하하는 뉘앙스가 포함되어 있다. 지방은 중앙에 비해 뭔가 덜 중요하고 뒤떨어져 있고 모자라는 것이라는 의미가 깔려 있다. 박경철이 쓰는 닉네임 '시골의사'의 경우를 제외하고 '시골'이란 말에는 대체로 얕잡아 보는 마음이 묻어 있다.
지방이나 시골이란 말은 시시해 보이고 중앙이나 서울이란 말은 그럴듯해 보이는 이미지가 잠재의식에 있다. 주워들은 얘긴데, 한 중앙방송의 기상캐스터가 "며칠간 서울을 괴롭히던 장마전선이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참 다행입니다"라고 했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우리에게는 '두 개의 국민'이 있다고 생각했다. '서울공화국' 국민과 '그 아래의' 국민이 따로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런 편견에 울분을 토한다. 우리가 길러놓은 아이들이 자신의 실력과 상관없이 '지방'대학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현실에 분노한다. 세계의 유수 대학 가운데 소위 서울에 있는 대학이 몇 개나 되나? 거의가 다 지방에 있다. 그렇다고 그들을 '지방'대학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지방이라는 말이 차별의 근거가 되는 것은 정의로운 세상이 아니다.
우리 자신의 정체성과 이익,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장래를 걱정한다면 우리 지역의 '지방'방송이 잘 나가도록 기원해야 한다. 나는 문화방송의 간판 아홉 시 뉴스데스크 머리에 독자적으로 대구 지역 뉴스를 날려 보내던 대구문화방송의 기개(氣槪)를 기억한다. 그리고 대구가 세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며 월드뉴스를 직접 리포트하던 개국 당시 대구방송의 열정(熱情)을 기억한다. 그런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면 '지방방송 끄라'는 말은 농담으로라도 하지 말자. 이렇게 '지방' 얘기를 꺼내는 것은 국정감사가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데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걱정하는 국회의원이 보이질 않아서다.
김태일 영남대 교수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
검찰, '尹 부부 사저' 아크로비스타 압수수색…'건진법사' 의혹 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