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어머니의 노후 준비

입력 2010-10-06 08:00:00

대한민국 노인의 60% 이상이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정작 당신들의 뒷날 대비는 하지 못한 채 노년을 맞게 되어 속수무책 빈곤층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는 기사를 읽었다. 역설적이지만 한 해에 8천 명 이상의 아이들이 부모에게 학대받거나 버려지고 있다는 기사도 비슷한 시기에 읽었던 것 같다. 아이를 다 키우고 난 후 남은 삶이 궁핍해지고 적막해져야 하는 것도 우울한 일이지만 세상 마지막 보루인 제 부모에게서조차 버림받은 아이들이 견뎌야 할 상처와 고통도 잘못 삼킨 찬밥덩이처럼 마음 한쪽에 걸렸다.

며칠 전 엄마를 모시고 신발을 사러 갔다가 그냥 돌아온 적이 있다. 신고 걷기만 해도 척추가 반듯해진다는 기능성 신발을 사드릴 생각이었다. 처음엔 그 중 마음에 드는 붉은색 가죽 구두를 골라 이리저리 걸음도 디뎌 보고 가격도 묻곤 하더니 갑자기 벗어놓고는 가게를 서둘러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무슨 신발이 발도 불편하고 생긴 것도 그렇게 투박한지 천금을 준다고 해도 싫다는 것이 당신께서 내세운 이유였지만 아무래도 주인이 부른 신발값에 깜짝 놀라신 것이었다.

어머니는 장사를 하셨다. 3남 1녀의 맏이인 내게 집과 동생들을 맡겨놓고 늘 무언가를 팔러 다니셨다. 떡이나 과일이기도 했고 베개나 옷가지 같은 것이기도 했다. 어린 나는 몸집이 작은 어머니께서 당신보다 두 배는 커 보이는 행상 보따리를 이고 새벽같이 집을 나서는 모습을 보곤 했었다. 좁고 기다란 골목길을 휘청거리며 걸어가시는 뒷모습을 그저 지켜보곤 했었다. 그때 내가 느꼈던 것은 불안감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작고 작은 그녀가 저 커다란 짐에 눌려, 어느 길에선가는 기어이 납작하게 눌려버려서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개구쟁이 동생들을 거두는 일도 집안일도 다 내 몫이 되었지만 어린 마음에도 녹초가 되어 돌아오신 어머니께서 내가 해놓은 일로 하여 안심하고 쉴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던 것 같다. 기억의 서랍 속 내 엄마는 날마다 바빴고 늘 집에 계시지 않았지만 세상에 밤이 내리고 달빛도 깊어질 무렵 골목길에 나가서 기다리면 우리에게 먹일 무언가를 사들고 어둠 저쪽에서 어김없는 약속처럼 돌아오셨다. 그때마다 우리는 얼마나 안도하였던가!

그렇게 지키고 키운 아이들이 장성하여 제 몫의 삶을 거뜬히 살아내고 있는 지금도 어머니는 일을 놓지 않으신다. 전통시장 한쪽에서 옷가지며 이것저것 파는 일인데 노후 준비는 당신 스스로 하시겠다, 당신 손으로 키워낸 자식들에게 결코 짐이 되지 않겠다는 것이 지금 어머니를 살아가게 하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다. 삶의 고비사막에 우릴 버리지도 않으셨고 도무지 기대지도 않으신다. 내 어머니는.

원태경<내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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