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요리하는 의사] 이별 파티

입력 2010-10-04 08:08:37

호스피스 의사는 이별 전문가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말기 암은 우리를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다. 환자의 마지막 의사로서 첫 만남과 동시에 이별을 생각한다.

이혜자(가명·74) 씨는 말기 대장암 환자였다. 초등학교 교사로 정년 퇴직했던 이 할머니는 인자함이 남달랐다. 2개월 전부터 시작된 장폐색으로 위비관 삽입(코에서 위까지 가는 관을 삽입해 복부 팽만을 치료하는 시술)을 한 상태에서 대학병원에서 옮겨왔다.

복부에 암덩어리가 있으면 마지막에는 물조차도 마시면 안 되는 장폐색 상태가 된다. 오랫동안 굶은 할머니는 늘 배가 고팠다. 병동에서 나를 볼 때마다 밥을 달라고 하는 할머니를 달래느라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밥 달라는 투정 이외에는 너무도 평화로운 병실 생활을 했다. 통증도 별로 없었고, 틈만 나면 붓펜으로 붓글씨를 쓰고 명상도 했다.

품위 있는 이별을 위해 평온관 식구와 할머니 가족은 '최후의 만찬'을 준비했다. 다행히 할머니는 음식 솜씨있는 딸들이 곁에 있었다. 한두 가지씩 음식을 마련해서 오후 5시쯤 평온관 거실에 모두 모였다. 손자가 불어주는 대금소리에 맞추어 춤도 덩실 추었다.

할머니의 밥과 국그릇 옆에는 작은 대접을 마련해드렸다. 음식 맛을 보시고 뱉을 대접이었다. 할머니 덕분에 평온관 식구와 다른 입원환자의 가족까지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먼저 떠나신 아버지가 커피를 그렇게 마시고 싶어했는데, 그 소원을 들어주지 못하고 떠나보냈다고 했다. 아버지 산소에 갈 때마다 커피를 사서 간다고 큰딸이 눈물을 글썽였다.

"이제 엄마는 그러지 않아도 돼서 마음이 가볍다"고 했다. 최후의 만찬은 눈물바다의 슬픈 만찬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평생 드셨던 밥과 이별을 했다. 신기하게 그 다음 날부터 '밥 줘'라는 말이 없었다.

우리는 가까이 했던 것을 떠나보내야 할 때 '충분한 이별'을 나누어야 한다. 한쪽 다리와 자신의 목숨을 바꾼 알베르트 에스피노사(스페인 영화감독, 암 환자)는 다리 절단 수술을 하기 전 '한쪽 다리 이별파티'를 했다. 그리고 그는 '환상사지현상'(사고로 팔다리가 없어졌는데도 계속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현상)을 겪지 않았다.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문제와 부딪치면서 절망하고 조바심을 내며 살아간다. 그리고 무언가를 하나씩 잃어가며 아픔을 겪는다. 사랑하는 모든 것과의 이별이 죽음이다. 자기의 영혼과 육체의 이별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평생을 같이 한 나의 육체와 영혼이 '영원히 안녕'을 말하는 순간이 임종의 단계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서서히 이별하고 있음을 존엄성을 가지고 따뜻하게 돌보는 일이 호스피스팀의 역할이다. 감동스러운 이별은 잃는 것이 아니라 곧 얻는 것이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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