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법관, 공무원은 헌법이 신분을 보장한다. 국회의원은 현행범이 아니면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 체포나 구금할 수 없고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토록 했다. 법관은 탄핵이나 금고 이상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않고는 파면되지도 않는다. 지위의 높낮이와 무관하게 공무원은 경기가 나쁘다고 월급을 떼이거나 쉽사리 잘리지 않는다.
의원과 법관, 공무원의 신분 보장 규정은 일차적으로 그들을 위한 것이다. 물론 그들의 신분을 보장함으로써 일반 국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고 높일 수 있지만 그들의 지위와 신분을 보장하는 법 규정은 분명 그들을 위한 장치다. 그러나 이런 특권 조항을 불평등한 혜택이라며 바로잡자고 나서는 이는 드물다. 꽉 막힌 도로에서 소방차나 응급차를 위해 길을 터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킬 가치가 있는 규정으로 여긴다. 공익을 위한 불평등이기에 감수하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대통령의 발언 이후 공정한 사회가 새로운 화두가 됐다. 대통령은 균등한 기회를 주는 것이 공정사회의 기본이라며 엄정한 법 질서 확립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정한 사회를 위해서는 공직사회, 권력과 힘을 가진 사람, 잘사는 사람이 먼저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 지도자급 특히 기득권자에게 지켜져야 할 공정사회의 기준은 기득권자에게는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일일지 모른다고도 했다.
대통령의 기득권자 운운을 두고 일부 보수층은 좌파들에게 공정사회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를 빌미를 주었다는 지적을 하고 대기업과 관가에는 대통령의 발언이 곧바로 사정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퍼지기도 했다. 그러나 돈과 힘을 가진 사람들의 걱정과는 아랑곳없이 국민들은 공정한 사회의 선언이 다시 공염불에 그칠지도 모른다고 여긴다. 대통령의 희망처럼 가지고 힘 있는 사람들이 먼저 나서서 공정사회 건설에 앞장서리라고 믿는 이는 많지 않다.
서양의 역사는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의 과정으로 나타난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얻기 위해 싸워 온 결과가 주권자 국민의 공화국이며 오늘날 그들의 법의 요체다. 약육강식의 시대에서부터 공정한 사회는 늘 약자의 희망이었다. 역사의 기록에는 자신의 권리를 내놓지 않으려는 가진 이와 구속과 속박, 불평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약자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새로운 결실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 역시 역사의 교훈이다. 변화는 묵은 것을 버리는 일에서 출발하지만 익숙하고 편리한 현실을 버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의 사회 구현이니 반칙이 통하지 않는 사회 등의 구호가 이어져 왔지만 여전히 반칙도 엄연한 질서로 뿌리를 잡고 있음이 드러났다. '차카게살자' 라는 문신을 새긴 조직폭력배의 거짓과 위선을 희화한 어느 시사 만평은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50대 중년들의 어린 시절엔 똑똑한 형제는 특별 대접을 받았다. 먹는 것 입는 것은 물론이고 나머지 형제들은 똑똑한 형제를 위해 일찌감치 학교를 그만두는 일도 감수해야 했다. '누구는 무우 먹고 누구는 인삼 먹나'라는 말도 유행했지만 대부분 그런 불평등을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가정의 갈등을 그린 드라마나 소설을 보면 불행히도 그렇게 특별 대접을 받고 자란 형제는 출세 이후에도 특별 대접을 요구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야인 시절에도 사회 질서와 의식의 향상 없이는 선진국 진입이 어렵다고 강조한 분이다. 공정사회가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내다본 대통령이기에 그의 의지는 의심할 바 없다. 그러나 대통령이 지적한 계층의 분들이 스스로 해결해 주기를 기대하기는 쉽잖다. 공정사회는 결국 국민의 몫이다.
살림에는 눈이 보배라고들 한다. 살피고 잘 고르면 적은 돈으로도 질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살림살이의 지혜다. 국민 스스로 교통질서부터 지켜야 법 지키지 않는 불량품을 솎아 낼 수 있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며 사회적 특수 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도 의원이나 법관처럼 헌법이 평등의 권리를 인정해 주지 않는가.
徐泳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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