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휴대폰에 가 닿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집으로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패러글라이딩을 타다가 예상치 못한 장소에 불시착한 기분이랄까, 무인도에 표류중인 막막함이랄까. 세상과 연결된 끈 하나가 툭 끊어져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깟 휴대폰 하루쯤 없으면 어때, 이참에 마음껏 자유를 누려보는 거야, 싶다가도 단절이 주는 어감 앞에서 나는 다시 막막해지고 만다. 허전하고 불안하다. 실수로 심장을, 콩팥을, 눈이나 코를 집에다 빠뜨리고 나온 것 같다.
가까운 곳에서 전화벨이나 메시지 수신음이 울리면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본능적이고 반사적이다. 순간 나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집에 도로 가고 싶어졌다. 누군가가 계속 전화를 걸어올 것 같고, 메시지가 수십 통 도착되어 있을 것만 같다. 어느 여류 작가의 소설집 제목처럼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있다. 벨소리는 내 귀를 괴롭혔다.
문명의 발달은 나에게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안겨 주고 있다. 휴대폰이 없었으면 하지 않아도 될 불안증을 종일 앓고 있다. 문제는 마음을 앓고 생각의 한 자락을 저당 잡혀 있으면서도 그것과 헤어질 수 없다는 거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쓴 『슬픈 열대』를 읽으면서 행복의 기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같은 환경이지만 누구의 시점이냐에 따라 행복의 질은 달라진다. 문명의 시점에서 보면 브라질 내륙 지방의 원주민들의 삶은 원시적이고 비위생적이며 야만적이다. 그러나 문명이 수혈되기 전 그들은, 그들 자체의 삶에 충분히 행복했다. 나름의 체제에 큰 불만도 없었다.
문제는 문명이 수혈된 이후에 일어났다. 처음으로 집 밖으로 외출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집 밖엔 신비하고 매혹적인 게 많았다. 눈이 휘둥그레졌고 가슴이 요동쳤고 뇌에서는 지진이 났다. 크고 작은 폭발음이 내부 어디에선가 계속 터져 나왔다.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의 시작이었다.
내게도 점진적인 폭발음은 있어왔다. 컬러 텔레비전이 나왔을 때도, 무선호출기를 가졌을 때도, 나만의 고유 전화번호가 생겼을 때도 그랬다. 내 몸 역시 매시간 진화하는 문명을 끊임없이 수혈받아 온 셈이다.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상대와 접속이 가능한 환경에 있어야 몸이 안심한다. 소통이 너무 잘 되어 오히려 소통불안증을 앓을 때도 있다. 종일 가슴앓이를 한 걸 생각하면 문명이 가져다 준 편리함과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아야 되는데 얼른 돌아가서 수신된 내용들을 확인하고 싶어진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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