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하나님의 계시

입력 2010-09-15 10:47:50

1970년 제작된 영화 '해바라기'에는 여주인공 '지오반나'(소피아 로렌)가 전사한 남편이 살아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찾아가는 길에 해바라기 밭이 끝도 없이 펼쳐지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나오는 해바라기는 엄청나게 크다. 러시아에서 육종된 이른바 '매머드' 해바라기로 키가 3.5~5.2m에 꽃의 지름은 30㎝나 된다. 아메리카 원산의 작은 식물을 이렇게 품종 개량한 것은 신을 속이기 위해서였다. 러시아 정교에서는 사순절과 강림절에는 기름을 써서 요리하는 것을 금한다. 그러나 해바라기씨 기름은 예외다. 그 이유는 해바라기가 신대륙 식물이다 보니 성경에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는 게 학자들의 얘기다.

음식 금기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신을 속이는 사례는 또 있다. 남미에서는 물에서 사는 설치류 카피바라를 명목상 어류로 간주해, 금요일에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가톨릭 금기의 예외로 쳤다. 과거 프랑스인들은 더 기발한 방법으로 신을 속였다. 그들은 양의 다릿살을 우물에 던져넣은 뒤 낚아올려 물고기로 취급했다.('지상 최대의 쇼' 리처드 도킨스)

먹고 싶은 음식을 먹기 위해 이렇게 신을 속인 것은 애교로 봐줄 만하다. 불쌍한 인간들이 오죽 먹고 싶었으면 그랬겠느냐며 신은 너그럽게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신의 말씀'이나 '신의 계시'란 이름으로 정의를 막고 불의에 길을 터준다면 신은 과연 용서하실까?

지난 6월 불법 방북한 뒤 북한 체제를 찬양한 혐의로 구속된 한상렬 목사(진보연대 상임고문)가 북한 체제를 찬양한 이유에 대해 "하나님의 계시"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수사 과정에서 "북한에서 살고 싶으냐"는 수사관의 질문에 한 목사는 "그런 건 아니다"고 답했다. 그러자 수사관이 "그러면 왜 북한 체제를 찬양하느냐"고 다시 묻자 한 목사는 "하나님의 계시에 따른 통일 운동"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한 목사는 목회자로서 하나님의 정의가 무엇인지, 그것이 남과 북 어느 쪽에 더 잘 실현되고 있는지 잘 알 것이다. 300만 명을 굶겨 죽이고 핵 개발로 민족의 생존까지 위협하는 북한 어디에 하나님의 정의가 깃들어 있다는 말인가. 그런 체제의 찬양을 '하나님의 계시'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그 백성 모두를 속이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 목사의 말에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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