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 손·다리 불편해도 희망은 잡고 있어요"
"작은딸이라도 잘 키워볼까 싶어 큰딸을 보육원에 맡길까 문의도 했었어요. 친권 포기 각서를 써야 한다더군요. 큰딸은 이 사실을 몰라요."
두 달 전 있었던 얘기를 하다 엄마는 목놓아 울어버렸다. 엄마의 터진 울음보를 생후 25개월 된 조막손 딸이 막았다. 제대로 펴지도 못하는 조막손으로 엄마의 눈가를 닦아냈다. 엄마는 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엄마 송미령(35) 씨는 "원래 눈물이 많지 않다"면서도 울었다. 마르지 않는 눈물. 송 씨의 눈물샘에는 뇌병변 1급 장애를 갖고 있는 두 딸의 아픔이 고여 있었다.
◆"엄마가 조금 참으면 돼"
송 씨는 2002년 미연이를 낳았고, 2004년 보증을 잘못 서 살고 있던 집을 날렸다. 2005년 시댁에서 쫓겨나듯 나왔고, 2008년 수빈이를 낳았다. 우여곡절이 조금 있었지만 자신의 삶마저 내놔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뇌병변 장애를 가진 두 딸 때문에 송 씨의 삶과 움직임은 자유로울 수 없었다.
송 씨는 작은딸 수빈이를 데리고 오전 9시부터 소아재활치료소에 와야 했다. 손과 다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는 수빈이가 조금이나마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매일같이 이곳을 찾는다.
척추에서 발끝까지 고정시켜 일어서 있는 상태를 기억하도록 만든 도구에 수빈이는 몸을 맡겼다. 이렇게 수빈이가 치료를 받는 동안 송 씨는 주변의 엄마들과 '어느 병원에 어떤 의사가 좋다'든지 '어떤 기술이 나왔다더라'며 정보를 나눴다.
오후 1시가 되자 큰딸을 데리러 나섰다. 큰딸 미연(9)이는 달서구의 일반 초교에 다니고 있다. 뇌병변 1급 장애를 갖고 있지만 몸이 불편할 뿐 일반 학교에 다니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송 씨는 "아이들 둘 다 지능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몸이 불편할 뿐"이라고 했다. 송 씨가 미연이를 데리고 향한 곳은 남구 대명동의 또 다른 재활의원이었다. 오후 3시부터 시작된 치료는 1시간 가까이 걸렸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달서구 월성동에 있는 개인치료시설에서 오후 6시 30분까지 치료를 더 받았다. 언어치료, 작업치료, 심리치료, 재활치료. 두 딸을 위한 치료의 연속이었다.
◆"아빠가 조금 견디면 돼"
송 씨의 남편 전세홍(38) 씨는 아내와 삶의 궤적이 비슷하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아이들의 치료비를 책임져야 한다는 점이다. 전 씨는 2008년 대구의 한 공장에서 임금을 받지 못한 채 회사에서 나왔고, 2009년 고기잡이 배를 탔지만 급여가 적어 오래 일하지 못했다. 지금은 경기도의 한 가내공장에서 일하며 매달 세 모녀에게 90만원의 생활비를 부쳐주고 있다.
전 씨는 2008년 수빈이가 태어나던 해 사면초가에 빠졌다. 두 딸 모두 뇌병변 1급 장애라는 소식을 들었고, 그해 회사가 문을 닫아버렸다. 임금체불로 생활비까지 빌려야 했다. 밀린 임금만 500여만원. 임금을 받아내려고 관할 노동청에도 도움을 청했지만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돈을 많이 준다는 소문을 듣고 곧바로 고기잡이 배도 탔다. 하지만 소문과 달랐다. 월 100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4개월 만에 그만뒀다. 결국 전 씨가 찾은 곳은 경기도 시흥의 가내공장. 대구에서 일하고 싶지만 마땅한 직장이 없다고 했다. 그나마 생활비를 부쳐줄 수 있어 다행일 뿐이다. 대신 가족과 자주 만날 수 없다. 최근에야 이들 가족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돼 영구임대아파트 입주를 신청했다. 아이들 앞으로 장애수당 등이 매달 40여만원씩 나오고 있어 아이들 치료비에 조금 도움이 되고 있다.
그래도 전 씨는 당분간 일자리와 집이 없으면 대구로 무작정 내려올 수 없다. 아직 갚아야 할 빚이 있는 데다 아이들이 커 갈수록 더 많은 돈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부는 "사실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고 했다.
◆"너희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만 있다면"
미연이가 태어난 뒤 온 집안은 풍비박산 났다. 장애아를 낳았다며 이혼하라는 말이 집안에서 나왔다. 얼마 되지 않아 보증을 선 집이 날아가버렸다. 부부가 미연이를 돌보기엔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수빈이가 태어난 뒤 의연해졌다. 방법을 찾으러 나섰다. 몇 년 전 뇌병변 1급 진단을 받았더라도 근육수술과 줄기세포 치료를 받는다면 장애를 뗄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100%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니라 해도 희망이 보였다. 하지만 갑갑해졌다. 온 가족이 함께 살 수 없는 이유는 결국 돈이었다.
두 아이의 치료를 위한 검사비와 왕복교통비 등만 100만원 가까이 든다. 탁아제대혈을 이용해 줄기세포시술을 한다는 것인데 그 전에 거쳐야 할 검사 비용도 부부에게는 엄청난 부담이다.
부부를 애태우는 건 의료진의 부가 설명. 뇌병변 치료를 위한 근육수술과 줄기세포치료는 생후 30개월 이전에 시술해야만 성공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호전되기는커녕 현상유지도 벅차 매일매일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몸은 불편해도 말귀를 잘 알아 듣는 딸들입니다. 희망이 있는데도 포기하는 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순 없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이러고 있으니…". 엄마는 또 눈물샘이 터졌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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