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남희의 즐거운 책 읽기] 조선의 여성들, 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 /박무영 외/

입력 2010-09-09 14:15:14

당당하고 아름다운 조선의 여성들을 만나다

조선시대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역사 속의 여성들을 아무리 떠올려 봐도 인간적 숨결을 지닌 모습으로는 뚜렷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박무영 등이 쓴 『조선의 여성들, 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을 읽었다. 이 책은 조선시대 여성 16인의 삶을 담고 있다.

역사 속에서 특정집단에 의해 특정한 부분만이 도드라지게 강조되거나 박제가 되어버린 모습을 벗어나, 시대의 한계 속에서도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려 했고, 자신만의 숨결로 살고자 했던 여성 그대로의 모습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여성들도 있지만, 처음 이름을 들어본 이들도 있다.

「봄바람 아름다운 경치는 예부터 보던 것이요 /달 아래 거문고 타는 것도 한 가지 한가로움이지요 /술 또한 근심을 잊게 하여 마음을 호탕하게 하는데 /그대는 어찌 책에만 빠져 있단 말입니까?」 봄날이 아름답지만 공부에만 전념하겠다고 적어 보낸 남편의 시에 화답하여 아름다운 봄 경치, 달 아래 거문고, 근심을 잊게 하는 술의 즐거움도 놓칠 수 없는 것이라고 하는 호방하고 활달한 기상의 여인, 이 여인의 이름은 송덕봉이다. 사대부의 부인으로 집안 살림을 맡아 하는 틈틈이 시를 썼고 그것을 시집으로 엮었던 송덕봉은 생활 체험에서 나온 시들과 자연의 모습, 더러는 술을 마시고 규방의 갑갑함을 노래한 시를 썼다. 남편 미암이 남긴 글을 통해 남편에게 자신의 요구나 주장을 당당히 드러내고 산 송덕봉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송덕봉이 살았던 시대는 조선 전기 문화의 절정기라 불리던 선조 때이며, 당시만 해도 여성에 대한 태도가 그다지 억압적이지는 않았다. 상속이나 혼인제도 등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본격화하기 전이었다.

「부인, 내 그대를 잃었으니 참으로 막막하구려. 공부하다가 의심나는 것이 있어도 누구에게 물어볼 것이며,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누가 그걸 할 수 있도록 해주겠소? 또 설사 내가 뭘 잘못하는 게 있어도 누가 바로잡아줄 것이며, 내게 지나친 허물이 있어도 누가 타일러 주겠는가?」 조선조 강정일당의 남편 윤광연은 부인의 죽음을 유난히 애통해하며 이 제문을 지었다. 강정일당의 남편 윤광연은 부인이 죽은 후 부인이 남긴 글들을 모아 문집으로 펴내기를 소망하였다. 남편을 이끌어주고 존재를 꽃피우게 해준 멘토였던 여성, 강정일당. 그녀가 죽은 후 남편이 쓴 제문에는 아내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보다 더한 궁벽함과 홀로 세상에 던져진 듯한 두려움조차 느껴진다. 그의 부인은 가난한 양반과 혼인하여 어려움 속에서도 남편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그는 부인의 바른 말과 지당한 논리에 죽을 때까지 승복했다고 하며, 부인 또한 남편을 통해 책을 빌려 보고 편지글로 외부와 교류하면서 더욱 깊이 있는 학문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정일당과 윤광연은 적극적인 대화와 의사소통을 통해 평생토록 서로를 고무하고 발전시켜 나갔으며, 서로에게 진정으로 충실했다. 강정일당과 송덕봉에게서 서로가 존중하고 사랑하며, 시와 글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부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조선시대 여성에 대해 알고 있는 것과는 꽤나 다른 모습이다.

양반 댁 며느리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자 의병가를 지어 마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며 독립의식을 고취한 조선후기 여성 윤희순의 삶도 인상적이다. 그녀는 스스로 의병장이 되어 나라를 되찾기 위한 싸움에 나섰으며, 한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쳤다. 다재다능한 여성예술가 신사임당과 자유로운 시정신의 소유자 허난설헌, 서녀로 태어나 한평생 소실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지만 뛰어난 여성시인이었던 이옥봉, 조선시대의 여성 철학자 임윤지당, 실패한 열녀의 기록을 「자기록」으로 남긴 풍양 조씨 등 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 그녀들의 삶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새벗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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