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천(56)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오뚝이를 연상시킨다. 지난해 촛불시위의 유탄을 맞고 장관직에서 물러나면서 공인의 삶이 끝나는 듯했지만 지금은 유력한 국무총리 후보로 거명되고 있다. 또 20여 년 동안 전업 농부로 살아오면서 농산물 개방 등 숱한 위기에서도 참다래유통사업단을 국내의 대표적인 농민조직으로 만들어 외국 농산물과 경쟁이 가능하도록 해 국내 농업계에 새 바람을 몰고 왔다.
그가 8일 대구한의대에 '한식(韓食)의 우수성'이란 주제로 강연 차 대구를 찾았다. 개인적으로 166번째 강의라고 했다. 그는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책 쓰는 일과 지역의 장벽을 깨고 화합과 소통의 전도사로 활동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지난해 9월 박비향(樸鼻香)이라는 책을 펴냈고, 현재는 전국에 다니며 활발하게 강의를 하고 있다. 이날 대구한의대가 개발한 약선음식(체질별 맞춤음식)으로 오찬을 한 그는 "첨단의료복합단지에 의료와 음식을 결합하는 사업을 추진하면 약선음식을 대구의 상징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그는 3월부터 한식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 젓갈 등 5대 발효식품을 바탕으로 한식을 세계화된 음식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장관 시절 한식의 세계화를 선포하기도 했다.
그는 30여 년 동안 농업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농사꾼이다. 고려대 농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전남 해남으로 달려가 땅을 빌려 처음 시작한 것이 키위 농사였다. 당시 국내에 도입된 지 4, 5년밖에 안 된 생소한 작물이었다. 5년 5개월 동안 비닐하우스에서 지냈던 시절이라고 회고했다. 키위 농사가 기반을 잡아가던 89년 정부가 키위 수입 방침을 밝히면서 최대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그는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키위를 '참다래'라는 이름으로 바꾼 뒤 생산에서 유통까지 일원화하는 참다래유통사업단을 만들어 수입 키위와 공존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신지식 농업인 '참다래 아저씨'로 소개된 배경이다.
그는 2004년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다. 20여 년의 전업 농사꾼을 그만두고 자신의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관행적 농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 창출을 모색하는 농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농업을 생산, 가공, 유통, 판매, 수출까지 두루 포괄하는 복합산업으로 바꿔야 하고, 문화와 관광 산업과 연계하는 입체적인 사업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한국농업인CEO연합회장 등을 지내는 동안 이 같은 소신을 끊임없이 전파했다.
그러다가 2007년 11월, 대선을 40여 일 앞두고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만났다. 그는 "현재의 농업으로는 희망이 없다. 농림부를 농업식품부로 확대 개편해 2차, 3차 산업을 결합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 대통령은 행정과 정치 경험이 일천하지만 농업에 대한 열정과 안목을 높이 사 초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으로 발탁했다. 그는 "창조적인 발상을 좋아하는 점에서 이 대통령과 나는 똑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쇠고기 파동으로 인한 촛불시위는 그에게 단명 장관이라는 불명예도 안겼다. 그는 "미국의 주식을 위험하다고 난리를 쳤으니까…. 걱정하던 광우병은 아직 한 건도 나타나지 않았다"며 "누가 그 자리에 있어도 외나무다리를 걷는 심정으로 (쇠고기 협상을) 해결하고 나왔어야 했다. 다 망한다고 하던 축산농가들은 원산지 표시 등으로 더욱 탄탄해졌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여전히 그를 신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후임 국무총리 하마평에 꾸준히 오르내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아직 젊다. 과거에 매달리지 않고, 미래를 기대하지 않고 '지금에 사는 것'이 좌우명이다. 쓰임을 받아 나가면 받는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그렇게 살 것"이라고 말했다.
20여 년 동안 농사꾼으로 산 덕분에 지역균형발전에도 큰 관심이 있다. 그는 "중앙과 지방이 서로 쌍바퀴처럼 조화롭게 굴러갈 때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전북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18.2%의 득표력을 올리기도 했다.
글·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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