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남희의 즐거운 책 읽기] 철학정원 /김용석 /한겨레출판

입력 2010-08-26 14:03:38

철학자의 사유의 정원에서 노니는 즐거움

방학인데도 생각할 틈조차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 가끔 나의 어린 시절 여름방학이 생각난다. 햇볕을 받으며 걷던 긴 방죽길과 시냇가 나무그늘 속에서 읽던 고전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무성하게 자라나던 사유의 나무들을. 그 시간들은 아마 나를 이룬 뼈와 살이 되었을 것이다.

철학자 김용석의 『철학정원』을 읽으며 사유의 즐거움을 생각한다. 김용석은 이 책에서 '고전으로 철학하기'라는 부제 하에 동화, 문학, 영화, 철학, 정치'사회'문화 사상, 과학의 고전에서 철학적 사유를 이끌어낸다. 그 사유가 무척 발랄하고 즐겁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왕자의 이야기인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에서 그는 왕자보다 더 중요한 존재인 제비를 본다. 도시 중심에서 하늘 높이 솟아 있는 기둥 위에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된 왕자의 동상과, 도시 변두리에 사는 여위고 지친 얼굴에 손은 상처투성이인 재봉사와 병든 아들, 너무 굶어서 정신을 잃고 책상에 엎드려 있는 젊은 희곡 작가, 길모퉁이에서 혹한에 떨고 있는 맨발의 성냥팔이 소녀를 떠올려본다. 이 극단적으로 상반된 두 세계의 칙칙한 이미지는 단절, 곧 모든 소통의 배제를 의미한다. 부유하고 행복한 세계와 가난하고 불행한 세계 사이를 가르는 완벽한 단절은 갈등조차 유발하지 않는다. 두 세계 사이에 있는 것은 절대 무관심이다.

그 두 세계를 연결해주는 것이 강가의 갈대와 연애할 정도로 발랄하고 진솔한 성격의 제비다. 제비는 겨울을 맞아 얼어 죽을 때까지 이 암울한 상황에 '소통의 다리'를 놓음으로써 두 세계의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는다. 이제 불행한 왕자도 행복한 왕자가 되었고 사람들도 행복해졌다. 제비의 역할을 하는 이는 누구일까? 저자는 봉사단체나 시민단체의 활동에서 제비의 희생과 헌신을 본다.

로마의 철인왕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는 플라톤이 통치의 이상형이라고 본 황제의 철학을 사유한다. 아우렐리우스의 진지함과 치열함은 철학자나 명상가들의 통념조차도 깬다. 아우렐리우스는 광대한 제국을 통치하면서 온갖 문제에 닥칠 때마다 그 근본을 깨닫기 위해 '자신의 영혼'으로 은신하고자 했다. 왕의 철학자적 자세란 바로 문제의 근본을 파악하고, 항상 기본 원칙을 성찰하며,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용기 있게 충실히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철인왕은 법과 제도에 따라 정치적으로 결행함과 동시에 그것을 철학적 원칙에 계속 비추어 보아야 한다.

그가 궁극적으로 지켜야 할 원칙은 삶의 기본 원칙, 곧 철학적 원칙이기에. 아우렐리우스는 자기 자신을 돌아봄으로써 바르게 통치하기 위한 실천적 지혜를 얻음과 동시에, 위정자로서 개인에 대해 성찰하는 일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다. '황제 티를 내거나 궁전생활에 물들지 않도록 조심하라. 늘 소박하고 선하고 순수하고 진지하고 가식 없고 정의를 사랑하고 신을 두려워하고 자비롭고 상냥하고 맡은 바 의무에 대하여 용감한 사람이 되도록 하라. 철학이 만들려고 한 그런 사람으로 남도록 노력하라'고 그는 적고 있다.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에서는 하나가 아닌 여럿의 자아를 통찰한다. 복수의 자아에 대한 인식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통로를 제공해줄 수 있다고 한다. 특히 현대 문화의 지형에서 인간이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열망과 노력이 어떻게 다양하게 표출되는지 관찰하고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인식 도구가 될 수 있다. 웰스의 '투명인간'에서는 자아노출과 타자성의 함수 관계를 짚어보고,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인간도 물질처럼 탐구할 수 있는지 묻기도 한다.

전통적인 고전에서부터 새로운 시각에서 고른 고전까지, 동화로 시작해서 과학 책으로 마무리를 하면서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철학자의 사유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유로 나아가기를, 그리하여 새로운 지식 창출에 이르기를 소망한다.

(새벗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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