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청문회 손익계산서

입력 2010-08-19 11:14:34

이란 제재를 놓고 정부의 고민이 깊다. 제재에 나서자니 이란의 보복이 겁나고 미국의 독촉에 마냥 어정쩡할 처지도 아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고마는(一得一失) 자연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는 외교의 어려움을 알 만하다. 일득일실의 원리는 국가정책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친서민을 내세우자 시장 친화를 주장하는 반대가 높아진다. 대립하는 양극의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한쪽의 반발은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죽도 밥도 아닌 중간을 택할 수도 없다. 해법은 결국 많이 얻고 적게 잃는 방법을 찾는 길 뿐이다.

얼마 전 개각으로 인사청문회 대상이 된 고위 공직자 후보들과 관련한 의혹들이 쏟아지고 있다. 불법자금 수수에서부터 위장전입, 세금 누락, 부동산 투기, 인사 로비, 논문 표절 등 불법의 행태들이 다양하다. 위장전입 등 몇몇 문제에 대해 일부 후보들은 일찌감치 적절치 못한 일이었다고 시인했다. 차라리 장관으로 뽑히지 않았으면 넘어갈 일들이 까발려지면서 내정 소식에 환하게 웃던 얼굴들이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의 인사권과 행정부에 대한 견제 차원에서 국회가 가진 권한이다. 고위 공직자의 능력과 도덕성을 검증한다며 10년 전 도입됐다. 이후 청문회 전후에 낙마하거나 임기 초반 사퇴한 장관과 권력기관장은 10명쯤 된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시절 낙마한 분도 여럿이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첫 조각 당시 3명의 장관 내정자는 청문회도 해보지 못한 채 중도하차했고 검찰총장 후보자는 청문회 실시 나흘 만에 자진사퇴했다.

그렇다고 나머지 분들이 의혹에서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비슷한 의혹에도 살아남은 이가 적잖고 국회의 반대 의견에도 대통령이 임명을 감행한 경우도 있다. 고위 공직자 인사 때면 "쓸 사람이 없다"는 말들이 흘러나온다. 이런저런 흠 잡히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공직자라고 비 새는 집에서 살며 아이들 학원에 보내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개인의 이익보다는 남을 위해 봉사하겠다며 공직에 나선 이들의 이중적 행태는 아무래도 개운치 않다.

청문회 도입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객관적 기준도 없다. 고무줄 잣대가 여전하다. 한나라당 대변인이란 분은 "위장전입 문제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 않으냐란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위장전입을 문제삼아 총리 후보의 낙마를 주도했던 장본인의 적반하장이라고 꼬집었다. 합의를 해야 한다면 차라리 위장전입 처벌 규정은 법에서 삭제하는 게 옳다.

청문회가 진행돼 봐야 알 일이지만, 여당 의원들도 구렁이 담 넘듯 할 수야 없겠지만 야당 의원의 매서운 공격도 일회성으로 지나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청문회를 통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까.

법의 허점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방법과 아들의 진학을 위해 주소를 옮겨두는 일은 걸려봤자 크게 다치지 않는다는 것을 먼저 알게 된다. 법이란 지키는 사람만 손해라는 사실도 실감한다. 야당일 때는 매섭게 물고 뜯다가 여당이 된 후엔 비호하느라 쩔쩔매는 의원들의 인간적인 모습도 볼 수 있다. 위장전입이나 부동산 투기에 걸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죄 없는 자 돌로 치라'는 말씀도 되새기게 된다. 혜택 받은 자의 책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실감하는 것도 얻는 이익일 수 있다.

잃는 것은 무엇일까. 어느 스님의 책 제목처럼 '저거는 맨날 고기 묵고' 남의 고깃국 한 그릇을 죄묻는 공직자의 뻔뻔스러움에 당할 상실감과 패배감의 상처다. 못난 가장의 처지에 부끄러워진다. 오늘의 한국 사회에 거짓말과 불법의 뿌리가 깊다는 사실에 절망할 수도 있다.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따질 때 청문회를 통한 국민들의 손익계산서는 적자다. 그렇다면 이젠 국회에 적자만 돌려주는 청문회를 포기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지 말라는 게 아니다. 청문회를 통해 행정부에 군기를 잡는 국회야 어깨에 힘이라도 주지만 상처받은 서민들의 마음은 누가 달래줄 것인가. 모르는 게 약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徐泳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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