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私費 털어 동네경로잔치 마련
"이놈들이 내 자식이지, 내 인생의 전부야."
2일 오후 대구 중구 남산동 대남경로당 앞. 불볕더위 속에서 홍재남(80) 할아버지의 손길이 분주하다. 홍 할아버지는 각얼음이 가득 든 얼음봉지에 굵은 매직으로 일일이 표시를 한다.
"이거는 옆 동네 경로당에 갖다 줘야 하고, 요거는 박 씨네 거야."
할아버지는 "이제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영 신통찮다"며 "한창때는 30여 집은 식은 죽 먹기로 외웠는데…, 세월 이길 장사가 없다"고 했다.
가마솥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대구 중구 남산동 주민들은 홍 할아버지가 있어 58년째 시원한 여름을 맞고 있다. 할아버지가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며 얼음을 판 지도 벌써 60년 가까이 됐다. 요즘은 봉사와 훈훈한 정까지 배달하고 있다.
동네에서 할아버지는 '얼음용사'로 통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얼음배달을 하며 살아온 할아버지에게 이웃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피란을 오고 나서니까, 정확히 1956년부터 얼음장사를 시작했어."
황해도 개풍군이 고향인 할아버지는 전쟁을 피해 대구로 내려왔다. 전쟁은 너무나 많은 것을 앗아갔다. 부모 형제들과 뿔뿔이 흩어진데다 할아버지의 머리엔 총상까지 남겼다.
"내 머리 만져봐. 여기에 아직도 총알이 들어가 있어."
할아버지는 "부모님과 여동생 두 명을 북녘땅에 남겨두고 왔다. 강화도에 가면 고향이 보인다. 전쟁이 났을 때 아버지가 일주일만 떨어져 있으면 만난다고 했는데 그게 벌써 수십 년"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전쟁의 상처를 간직해서일까. 가게 이름은 '용사의 얼음집'이다. 용사는 곧 할아버지를 말한다. 혈혈단신으로 정착한 타지에서 약한 맘 먹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이렇게 이름지었다고 했다.
냉장고가 없었던 시절, 할아버지는 삼륜차를 타고다니며 대구 곳곳에 얼음을 배달했다. 하지만 냉장고가 대중화되면서 할아버지의 얼음을 찾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었다.
할아버지는 "옛날에는 대구역 앞에 얼음공장이 두 개나 있었다. 거기서 얼음을 가져와 하루에 50개씩 팔았다"며 잠시 추억에 잠겼다.
할아버지는 지난 2003년 여름엔 애지중지하던 배달 리어카를 도둑맞았다. "누가 훔쳐갔는지는 몰라도 괘씸했지. 친구를 잃어버린 것처럼 섭섭했고. 그때부터 자식들이 몸도 안 좋은데 그만두라고 해서 밥벌이 얼음장사는 접었어."
이때부터 할아버지는 얼음 대신 봉사를 배달하기 시작했다. 형편이 어려운 동네 노인들을 위해 사비를 털어 매달 경로잔치를 열어주는 등 동네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선다. 밤길 여고생을 위해 동네 가로등 설치를 추진해 성과를 얻어내기도 했다.
봉사활동으로 지금껏 받은 상만 해도 30개가 족히 넘는다. "지난 2007년에는 청와대에 가서 노무현 전 대통령한테 대통령상도 받았어." 홍 할아버지는 번쩍이는 금색 배지를 보여주며 자랑스러워 했다.
"대구시민들이 50년 넘게 얼음을 사줬으니 내가 먹고산 거 아니겠어. 죽을 때까지 그 빚 갚으려고 그러는 거지 뭐. 집사람은 나 죽으면 관에 얼음을 넣어준다 그러네. 하하." 할아버지의 웃음소리가 더 없이 시원하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황수영 인턴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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