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활의 고향의 맛] 피라미

입력 2010-07-22 14:22:33

어릴 적 어머니는 교도관처럼 무서웠다. 어머니가 집에 계실 때면 무조건 책을 들고 공부하는 체해야 했다. 책 밑에 만화책을 깔아 두었다가 들키는 날에는 온 집안이 시끄러웠다. 아비 없는 이 가난을 벗어나는 길은 공부밖에 없다고 판단하신 것 같았다.

어머니는 밖에서 일을 하면서도 곁눈으로 지켜보고 계셨다. 탈옥은 꿈도 꾸지 못할 진짜 꿈이었다. 그렇다고 모범 죄수는 아니었다. 공부보다는 장난, 그 장난은 통상 저지레로 이어져 가뜩이나 눈물 많은 청상과부의 눈에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입버릇은 "이 노므 자슥"이었다.

주일날은 죄수의 휴가날이다. 어머니가 교회에 가셨다가 귀가하는 시간은 대충 오후 서너 시다. 그때까지는 자유시간이다. '따라 나서겠다'고 삐죽거리는 남동생에게 사카린 찬물 한 그릇을 타주며 집 보기를 맡긴다. 그러고는 우리 집 앞 거랑(川)으로 피라미를 잡으러 간다. 아무 장비도 없는 맨손이다. 서사리(西沙里)에서 내려오는 거랑물이 발목을 적실 정도로 얕다. 그 속에는 피라미들이 떼 지어 몰려다닌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이들의 대열을 흩트려 놓는 일이다. 마치 초원에서 누떼를 사냥하는 사자처럼 이탈하는 한 마리를 공격의 목표로 삼기 위함이다.

##지친 피라미 돌틈으로 숨었을 때 잡아

목표로 정한 피라미가 달려가는 방향을 향해 손뼉을 치며 팔을 뻗어 차단하기를 반복하면 결국 지치게 된다. 고향에선 이렇게 잡는 방법을 '얼아서 잡는다'고 한다. 그 말은 피라미가 겁을 내 얼어붙는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지친 놈은 돌 틈으로 숨게 되고, 그러면 손을 넣어 잡아내기만 하면 된다. 자갈은 쨍쨍 햇볕에 바짝 달구어져 있다. 피라미가 가득 담겨 있는 검정고무신을 움켜쥐고 맨발로 강바닥을 걸어야 한다. 아프리카 소년들이 시뻘겋게 달궈진 불판 위를 달리면서 성년식을 치르듯 나는 '피라미 성년식'을 수도 없이 치렀다. "히야(형아의 고향 사투리) 많이 잡았나." 굵은 소금을 뿌린 피라미를 호박잎에 여러 겹으로 싸 보릿짚 불에 던져둔다. 고무신에 넘쳐났던 피라미 찜은 눈 깜짝할 사이에 입 속으로 사라진다.

##모래성 만들어 고기 모은 뒤 회초리 타작

맨손으로 피라미 잡기. 그렇게 어렵지도, 그렇게 쉽지도 않은 어릴 적 놀이다. '얼아서 잡는' 방법에서 한 단계 진보한 것이 버드나무 회초리 방식이다. 금호강은 여울과 소(沼)를 이루는 깊은 곳도 있지만 장마 때 떠내려 온 모래가 델타를 이뤄 한 뼘 깊이밖에 되지 않는 얕은 곳도 많았다. 또래들과 '피라미를 잡자'는 모의가 성숙되면 강가로 나가 버드나무 회초리를 한 묶음씩 꺾는다. 강변에 도착하면 모두 옷을 벗고 물속 모래판에 이삼십 미터 길이로 길게 둑을 쌓는다. 물이 흘러 들어오는 입구와 나가는 출구를 좁게 좁혀 물길이 종전대로 흘러가게 그냥 둔다. 피라미 성이 완성되면 다시 피라미들에게 성을 내준다.

붉고 푸른 혼인 색으로 치장한 먹지와 피라미들이 배때기에 간지럼 먹이는 놀이를 즐기기 위해 떼 지어 모여든다. 그것은 알고 보면 짝짓기의 리허설로 우리가 만든 모래성은 피라미들이 짝을 찾는 축제장인 셈이다. 신호에 맞춰 두 사람이 입구와 출구 쪽으로 뛰어가 두 다리를 벌리고 앉아 버리면 그 속의 피라미들은 완전 포위된다. '트로이의 목마'가 따로 없다.

나머지 개구쟁이들은 회초리를 들고 성곽의 담을 넘어 들어가 보리타작하듯 마구 두들겨팬다. 강물 위로 푸른 햇발을 튀기며 달아나던 스타 더스트(star dust), 은백색 유탄을 닮은 피라미들이 호된 매를 맞고 쓰러진다. 은빛 찬란한 자신의 몸을 하늘나라의 제수로 드리며 마지막 기도를 드린다. "오! 하나님 아버지, 환란입니다. 제 몸을 받으소서."

피라미들의 배를 딴 후 돌 틈에 숨겨둔 찌그러진 냄비를 찾아온다. 왕소금만 뿌린 피라미 볶음이 이렇게 맛이 있을 줄이야. "하나님, 감사합니다." 고향의 여름은 이렇게 간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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