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남희의 즐거운 책 읽기] 사람풍경 /김형경/아침바다

입력 2010-07-22 08:16:50

여행, 내 마음을 들여다보다

여행의 계절이다. 여행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자전적인 여러 편의 소설에서 심리적인 문제를 주로 다루어온 소설가 김형경은 여행에서 자기 자신을 만난다. 여행 에세이 『사람풍경』에서 그는 여행 중에 만나는 갖가지 장소에 정신적인 문제를 결부시켜 생각한다. 무의식, 우울, 불안, 의존, 중독, 투사, 분리, 자기애, 인정과 지지, 공감 등.

첫 장에서 저자는 고대 로마의 지하 묘지 카타콤을 찾아간다. 박해받는 기독교인들이 지하묘지에 예배실을 만들어놓고 신앙을 지켜나가는 장면을 영화로 본 후 작가는 오랫동안 카타콤을 꿈꿔왔다고 한다. 좁고 어둡고 스산하고 끝없는 지하 통로를 따라 내려가 4층 깊이까지 지어져 있는 카타콤 내부를 들여다보며 그는 이질적이고 거대하고 복잡하고 위험한 무의식의 세계를 연상한다.

작가는 여기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신에 대한 이미지가 유년에 형성된 것이며, 자신이 초라하고 보잘것 없고 무가치한 존재라는 느낌, 춥고 어두운 골목에서 불 켜진 이웃의 창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모두 유년에 만들어진 것임을 되새긴다. 아주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느낌과 감정들이 자신의 삶을 지배하고 있음도 깨닫는다. 어떤 심리학자는 억압된 무의식을 상처 입은 내면의 어린아이로 비유하며 '성인 아이'로 지칭하기도 하고, 상담심리학에서는 성인 아이라 불리는 바로 그 '내면의 아기를 성인이 된 자신이 보살피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로마가 고대 유적을 발굴해 환한 햇살 아래 드러내듯 무의식을 의식의 차원까지 끌어올리고, 고대 유적 때문에 지하철을 더 많이 건설하지 못하는 불편을 감수하듯 무의식 때문에 생에 반복되는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며, 그럼에도 바로 그 유적들을 자원으로 엄청난 관광수입을 올리는 것처럼 우리도 무의식을 자원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독일 뮌헨의 국립과학박물관을 보고 나오는 길에서는 우울을 생각한다. 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사랑이고 다음으로 중요한 감정이 분노라면, 그것들의 연장선상에서 가장 주의 깊게 돌봐야 하는 감정은 우울증. 프로이트의 계보를 잇는 정신분석가들은 분노가 억압되어 제대로 표출되지 못할 때 우울증이 생긴다고 보았다. 외부로 표출되지 못한 감정들이 내면으로 돌려져 자기 파괴, 우울증, 자살 등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니까 우울증은 돌아오지 않은 사랑, 잃어버린 대상에 대한 슬픔의 감정이라는 것이다.

우울증을 느낄 때 우리 사고는 부정성에 의해 지배받고 있으며, 그런 때는 자신뿐 아니라 세계 전체를 어둡고 침울하게 지각한다는 것, 우리의 정서에 혼란을 일으키는 부정적 사고에는 거의 언제나 커다란 왜곡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가 우울증을 다스리는 방법은 운동이라고 한다. 우리의 심리는 어쩌면 아주 간단한 육체적 메커니즘에 의해 지배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에서는 타인에 이르는 가장 선한 길, 공감에 대해 생각한다. 새 한 마리, 풀 한 포기에도 그토록 공감하는 프란체스코의 태도, 부유한 중세 교회를 외면한 채 가난한 자들의 삶에 그토록 공감했던 방식에 대해. 성인, 종교 지도자, 신화 속 인물들이 고통과 고난의 시간을 거쳐 얻게 되는 인간에 대한 공감 능력. 공감 능력은 인간 감정의 다채로운 영역에 대해 세밀하게 체험한 위에서 획득되는 능력이다.

내 속에 억압된 분노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타인의 분노에 대해서도 헤아려볼 수 없다. 인간의 부정적 속성에도 불구하고 위대하고 힘겨운 긍정의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 모두 그러하다는 자각과 그 자각을 바탕으로 하는 공감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라고 그는 말한다. 작가와 함께 낯선 여행지들을 거닐며 나의 내면에 있는 심리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골똘히 생각해본다.

(새벗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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