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장이 미래다] SSM 벌써 79곳…골목상권 '분노'

입력 2010-07-20 09:52:22

대기업 무분별한 진출 야간 개업 등 불사…"전통시장 다 죽어" 상인들

기업형 슈퍼마켓(SSM) 입점을 반대하는 대동시장상인회를 비롯한 대구시상인연합회 소속 중소상인들이 19일 오후 대구 달서구 GS슈퍼상인점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기업형 슈퍼마켓(SSM) 입점을 반대하는 대동시장상인회를 비롯한 대구시상인연합회 소속 중소상인들이 19일 오후 대구 달서구 GS슈퍼상인점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대형 유통자본들의 기업형 슈퍼마켓(SSM) 진출이 늘면서 지역 영세상인들의 생존권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벌써 대구경북 지역에만 79개의 SSM이 들어서 있으며 점차 그 수를 늘려가고 있다. SSM 진출을 둘러싼 분쟁이 끊일 날 없지만 대기업들은 좀처럼 이를 포기하지 않을 태세이다.

◆골목상권이 다 죽는다

19일 오후 2시 대구 달서구 상인동 대동시장 맞은편 GS슈퍼 상인점 앞에서는 시장상인 60여 명이 SSM 입점을 저지하기 위해 생존권 투쟁을 벌였다. 이들은 "SSM이 들어서면 인근 전통시장 상권은 고사하고 말 것"이라며 GS슈퍼 측에 입점 철회를 강력히 요구했다.

이곳은 원래 지역의 한 업체가 운영하는 슈퍼마켓이 있던 곳인데 최근 GS슈퍼로 간판을 바꿔달면서 인근 상인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시장상인들은 9일 중소기업청에 사업조정 신청을 냈고, 다음달 7일까지 집회신고를 내놓은 상태다. 조영복 대동시장 상가번영회장은 "SSM이 들어오면 영세한 시장 상인들은 가격 경쟁력을 잃어 살아남기 힘들다"며 입점 철회를 촉구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시장상인들의 사업조정 신청을 받아들여 13일 대구시를 통해 일시 영업정지 권고를 내렸지만 시위가 벌어진 19일 오후에도 GS슈퍼는 한쪽에서 리뉴얼 공사를 진행하면서 영업을 계속했다.

GS슈퍼 측은 이미 5월부터 영업을 해왔기 때문에 이제와서 문제 삼는 것은 '발목 잡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구시와 달서구청은 "5월부터 일부 영업을 해온 것은 사실상 GS슈퍼 측의 편법"이라며 "현재는 영업 개시 이후 90일 이전까지 사업조정신청이 가능하기 때문에 설사 5월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하더라도 상관이 없다"는 입장이다.

◆SSM 진출에는 편법도 불사

현재 대구에는 모두 27개의 기업형 슈퍼마켓이 입점해 있다. 롯데슈퍼가 15곳으로 가장 많고,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8곳, GS슈퍼가 4곳이 영업중이다. 경북에도 52개의 SSM이 운영되고 있다.

지자체는 인근 상인들이 입을 타격을 우려해 입점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부터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법'에 의해 중소기업청에서 사업조정을 하고 있지만 대기업들은 이를 피해 위장개업도 불사하고 있다.

대구시 관계자는 "지난해 문을 연 2곳의 롯데슈퍼의 경우 야간을 틈타 불시에 영업을 시작하는 편법을 동원했다"며 "지난해까지만 해도 영업을 시작하기만 하면 사업조정 대상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GS슈퍼 상인점도 비슷한 경우다. 간판조차 바꿔달지 않은 채 영업을 계속해오다 불시에 간판을 바꿔다는 편법을 동원한 것.

하지만, 사업조정을 통해 서로 상생하는 해법을 찾은 경우도 상당수다. 대구경북에서는 지난해 SSM이 중기청의 사업조정 대상으로 포함된 이후 지금까지 모두 10건의 사업신청 조정이 접수됐는데 이 중 상생 합의 5건, 입점 철회 1건, 당사자 합의로 인한 조정 철회 2건 등으로 처리됐다. 전국적으로도 175건이 접수돼 88건(50.2%)가 자율조정을 통해 분쟁이 해결됐고, 정부의 강제조정이 내려진 경우는 단 4건에 그쳤다.

◆시급한 법 개정은 언제?

대형슈퍼로 인해 이미 한 번 타격을 입은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은 대기업들의 SSM 진출로 고사 지경에 빠져있지만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정부의 미온적 대응으로 법 개정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것. 대구경북의 경우는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로 인한 피해가 더욱 큰 상황이다. 지역에서 돌아야 할 돈이 대기업을 통해 모두 수도권으로 쓸려들어가는 자금의 역외 유출을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지역 경제계 관계자는 "이렇게 미적거리다가는 결국 지역의 골목상권이 다 죽고 난 후에나 법이 개정될 것"이라며 "중소 영세상인들의 밥그릇까지 빼앗는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진출을 막을 법률 마련이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는 지난 5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법(상생법)과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이들 법안은 정부쪽 유보 주장에 밀려 아직도 국회 법사위에 계류중이며 언제 본회의에 상정될 지도 미지수이다. 개정안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직영점과 체인점을 사업조정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과 재래시장 반경 500m 이내에 대기업 슈퍼마켓이 입점할 경우 지자체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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